청년예수방랑기-휴전선교회 설립회의
입력 2011-10-31 10:45
청년 예수 방랑기
휴전선교회 설립회의
광복절을 앞두고 한반도 남북에서는 통일의 날을 앞당기자는 투쟁의 파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허지만 같은 통일이라도 한 쪽은 적화통일 다른 쪽은 민주통일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나 예수는 휴전선 안에 있는 어떤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10분쯤 지났을까,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성큼성큼 걸어서 내 앞으로 왔습니다. 한 사람은 북쪽, 한 사람은 남쪽에서 왔습니다. 우리 세 사람은 널찍한 바위에 걸터앉았습니다.
“서로 인사 나누시면 좋겠습니다.”
“나 리승만입니다.”
“나 김일성입네다.”
두 사람은 얼굴을 외면한 채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이름만 교환했습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두 분을 모신 것은 북남 남북 간에 화해를 이루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2천 년 전 이스라엘 땅 어떤 산에서도 이런 모임을 가진 적이 있었지요. 참석자는 모세와 엘리야와 나 예수였고, 주제는 하늘과 땅,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화해를 이루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화해를 위하여서라면 리승만 당신이 먼저 머리 조아려 사과해야 합네다.”
나 예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일성이 따발총 쏘듯 기선을 제압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동의를 구하려는 듯 그때서야 내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은 김일성 아니 김성주 바로 당신이지요. 당신들이 첫 단계에서 크게 이겼다는 것이 그 확고한 증거외다. 참패할 걸 알면서 전쟁 일으킬 바보가 세상에 어디 있나요?”
이승만은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따져가며 김일성에게 전쟁의 책임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다가는 화해를 위한 모임이 또 다른 전쟁터가 될 것만 같았습니다.
“진정한 화해를 위하여서는 원인과 경과를 분석하는 것이 분명히 중요합니다. 허지만 오늘은 단 한 가지라도 실천방안을 합의하여 발표해야 국민과 인민들에게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이 휴전선은 인민에게나 국민에게나 모두 큰 고통을 안겨주는 족쇄인데 어떻게든 이걸 조금이라도 풀어야 하겠습니다.”
“혹시 소집자께서 무슨 복안이 있으실 것도 같습니다. 단수 안이건 복수 안이건 내어 놓으시면 그걸 기초로 토의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목소리도 떨리고 말도 느릿느릿 했지만 이승만은 문제를 쉽게 풀어가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좋습네다. 나는 휴전선의 콘크리트와 철조망을 당장 없애자고 여러 번 밝힌 사람 아닙네까.”
김일성은 또 화끈한 데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말씀 드리겠습니다. 휴전선 안에 남/북 북/남이 함께 예배드리는 교회당 하나 건립합시다. 서로를 살리자는 뜻에서 ‘북남함생교회’라는 이름을 붙이면 더욱 좋겠구요.”
두 사람은 당혹한 표정으로 생각해 볼 여유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 때 나 예수는 그들의 속을 자세히 꿰뚫어 보았습니다. 김일성은 그것이 정권유지의 암초가 될 것을 우려했습니다. 이승만은 북진통일에 방해가 될까 걱정했습니다. 다만 반대할 대의명분이 없어 고민들이었습니다.
“김일성 형제는 부모님도 신앙생활을 했디요? 이승만 형제는 교회 장로 아닙니까? 무얼 주저하십니까? 우선 큰 틀은 합의하고 작은 문제들은 앞으로 보완하도록 합시다.”
나 예수는 좀 강력하게 밀어부쳤습니다. 그 둘이 우물쭈물하는 동안 별다른 반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재빨리 합의를 선언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2015년부터 휴전선교회당에서 매 주일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해방과 분단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기뻐해 주십시오. 수많은 목숨들이 피를 흘린 바로 그 땅에 나 예수가 피흘려 건립한 남북함생교회가 드디어 창설됩니다. 남쪽과 북쪽 신자들이 나란히 앉아서 원수는 물론 ‘원쑤’까지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통곡하며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회의가 끝나고 각각 다른 길로 산을 내려왔습니다. 김일성은 북쪽 길, 이승만은 남쪽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나 예수는 동쪽 길로 내려가 동해까지, 다시 서쪽 길로 내려가 황해까지 휴전선한 가운데를 신나게 걸었습니다.
“하나님 안에 동서나 남북이 있으랴
온 세계 모든 민족이 다 형제 아닌가”
하고 찬송가를 부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