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라운지-정원교] 남북한 방문… 존재감 드러낸 리커창
입력 2011-10-30 18:56
‘시리(習李)조합’이란 말이 있다. 2007년 10월 중국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17전대)에서 당시 상하이시위원회 서기 시진핑(習近平)과 랴오닝성위원회 서기 리커창(李克强)이 동시에 일약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자 생겨난 조어(造語)다.
사실 17전대가 열리기 한 달 전만 해도 시 서기보다는 리 서기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후계자가 되리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시 서기는 예상을 깨고 전면에 등장했다. 시 부주석과 리 상무부총리는 내년 10월로 예정된 18전대에서 중국 지도부가 대거 교체되면 그야말로 국가 경영의 중심에 서게 된다.
시 부주석은 각 방면에서 두루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능력을 갖췄다는 평을 듣는 데 비해 리 부총리는 수재형 테크노크라트로 비춰진다. 학력만 놓고 보면 리 부총리가 더 두드러진다. 리 부총리는 베이징대 법학과 졸업에 베이징대 경제학 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 학위 논문으로 상을 받기도 했다.
시 부주석은 칭화대 화공과를 졸업했으나 문화혁명 때 무시험 추천제로 입학한 소위 ‘공농병(工農兵)대학생’이었다. 그가 푸젠(福建)성장을 지내는 동안 칭화대에서 받은 법학박사 학위는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리 부총리는 2008년 부총리가 된 뒤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고 지난 27일 귀국했다. 그가 남북한을 넘나들면서 쌍방 간 현안을 논의한 것은 언론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의 방한은 서울시장 선거와 겹친 탓인지 한국 언론에서 그다지 크게 보도되지 않았지만 중국에서는 주요 뉴스로 다뤄졌다.
중국 지도자가 남북한을 잇달아 방문하는 모양새에 부담을 느낀 중국 정부는 일본이나 동남아 국가 등 다른 나라를 함께 방문하는 것도 검토했으나 여의치 않았다는 후문이다. 리 부총리로서는 결과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더욱 드러내 보이게 된 셈이다.
리 부총리는 후 주석과 안후이(安徽)성 동향으로 그를 정치적 스승으로 모시는 사이다. 후 주석은 같은 공청단 출신인 그를 후계자로 삼고 싶었지만 태자당, 상하이방과의 의견 조율 과정에서 뜻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시리조합의 한 축인 그가 시 부주석과 함께 ‘5세대 지도부’에서 거대 중국을 어떻게 끌고 갈지 자못 궁금해진다.
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