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정치 대안 떠오른 시민단체] 현실 속의 시민정치 실험… “기회인 동시에 위기”

입력 2011-10-30 18:19


박원순 서울시장의 등장은 시민단체의 제도권 진입을 의미하는 하나의 사건이다. 안철수 신드롬 역시 기존 정치와 다른 ‘시민정치’에 대한 기대감이 깔려 있다. 시민단체의 역할을 빼고 내년 총선과 대선을 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시민단체 내부에서 현실정치 참여는 기회인 동시에 위기라는 자가 진단이 나오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현실정치 진입을 예고된 수순이라고 표현했다. 정당정치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증폭되면서 시민단체가 주가 되는 시민정치의 등장은 현대사의 큰 흐름 속에 예고된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진보 성향인 참여연대 박원석 협동사무처장은 30일 “정당정치의 한계와 취약성으로 인해 한국의 시민운동은 넓은 의미에서 정치적 행위를 요구받았다”며 “그런 면에서 이번 선거는 이례적이면서도 예고된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성향의 바른사회시민회의(시민회의) 전희경 정책실장도 “박 시장의 당선은 정당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만에 의한 반사이익적 측면이 있다”고 평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인기도 정당정치 밖에서 대안을 찾으려는 현 시대의 부산물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여·야 모두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자 상대적으로 믿을 만하고 깨끗한 사람을 정치판 밖에서 찾다가 등장한 인물이 안 원장이라는 것이다. 보수진영 시민단체들은 안철수 신드롬에 대해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평가절하하면서도 신드롬의 원인 분석은 진보단체들과 맥을 같이했다. 허현준 시대정신 사무국장은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젊은 세대들의 집단적 의사표현이 일시적으로 나타난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의 현실정치 참여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때가 덜 묻은 전문성 있는 인사들이 사회적 이슈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논리다. 사회를 지배하는 1%가 아닌 사회를 구성하는 99%를 위한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는 신뢰도 기저에 깔려 있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박원순 시장의 실수는 시민사회 전반에 치명적 상처를 안기는 ‘부메랑 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박 처장은 “시민운동이 오랫동안 추진해 온 정치개혁을 더 적극적으로 실현하고 대체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은 분명하지만 만약 박 시장이 자신의 비전과 소신과 다른 시정을 펼친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시민사회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시민단체 본연의 권력감시 기능을 강화하고 정치권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것을 주문했다. 조대엽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박 시장의 출현은 시민사회의 다양화·분화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되 정부 및 기업의 공공성을 확대하는 협조적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는 “시민과 접촉하는 훈련이 잘 돼 있고, 고유영역의 전문성을 갖춘 시민단체 출신 정치인의 출현은 다른 나라의 사례와 비교해 봐도 자연스런 현상”이라며 “시민단체가 스스로 중립성과 순수성을 훼손치 않도록 유의하면서 시민단체 출신 정치인이 시민 가까이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충분히 만들어 주면 공생발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