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사나이 山에 잠들다… 실종 박영석 대장 수색 중단 가족 등 현지서 추도식

입력 2011-10-30 21:06


“산은 내게 있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40차례 이상 세계의 높은 산들을 오르는 동안 쉽고 안전한 등반은 단 한번도 없었다. 목숨을 건 위험한 등반, 그 속에서 나는 삶을 생각하고 신의 존재와 인간의 한계를 절실히 느꼈다. (중략) 권력, 명예, 사랑, 행복 등 각자 추구하는 삶의 가치가 무엇이든 그것은 결국 죽음을 맞이해야 우리 삶의 원동력이 되어 준다. 내게 그것은 산이었다.”(박영석 대장이 2003년 11월 직접 쓴 자서전 ‘산악인 박영석 대장의 끝없는 도전’ 머리말 가운데)

미리 직감했을까. 영원한 ‘산사나이’ 박영석(48) 대장이 그토록 사랑했고 도전했던 산에서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박 대장은 8년 전 출간한 자서전에서 ‘산’과 ‘죽음’을 동시에 언급했다. 책에서 박 대장은 “불효하지 않는 아들, 착한 남편, 좋은 아빠가 되는 길은 더 이상 위험한 곳으로 떠나지 않고 그들과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그토록 쉬운 일이 내겐 왜 이토록 어려운 것일까. 아마도 끝내 그 쉬운 일을 하지 못할 것이다”라며 괴로워했다.

박 대장이 히말라야행 짐을 꾸리면서 항상 미안해했던 그 가족들(장남과 박 대장 동생)이 박 대장의 생일(11월 2일)을 사흘 앞둔 30일(이하 현지시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4200m 베이스캠프 앞에 섰다. 장남 성우(21)씨는 서울에서 준비해온 음식들을 눈 덮인 산 어딘가에 있을 아버지 박 대장에게 올리며 눈물을 쏟았다. 실종된 박 대장과 신동민(37) 강기석(33) 대원에 대한 추모제는 다음 달 1일부터 사흘간 서울대병원 영안실에서 엄수되며 합동 영결식은 3일 오전 10시 서울대병원 영결식장에서 사상 처음으로 산악인장으로 열릴 예정이다.

이에 앞서 10일 동안 수색 작업을 진두지휘했던 연맹은 29일 “겨울이 곧 시작되고 기상조건까지 악화되면서 또 다른 2차 인명사고가 우려돼 실종자 가족들, 수색 전문가들과 상의해 올해 수색작업을 종료했다. 내년 해빙기가 돌아오면 다시 수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 대장 친누나인 박해숙 뉴질랜드 오클랜드 소망순복음교회 목사는 “계속 동생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박영석 원정대는 안나푸르나 남벽 새 루트 개척에 나섰다가 지난 18일 오후 6시 눈사태로 어려움에 빠졌다는 교신을 남긴 뒤 연락이 두절됐다. 무전기 속 거친 숨소리가 ‘산사나이’ 박 대장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흔적이었다.

이용훈 기자 co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