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태·크레바스도 ‘목숨 건 도전’ 막지 못했다… 국내 원정대 어떤 조난 사고 있었나
입력 2011-10-31 00:34
박영석 원정대의 실종 사건으로 본 한국 산악인의 고산사고는 히말라야 원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70년대부터 발생했다.
고산사고 1호는 1971년 김호섭 대장과 그의 동생 김기섭 대원이 등반한 히말라야 8000m 이상 14개 봉우리 가운데 하나인 마나술루(해발고도 8163m)에서 일어난 사고다. 이들은 7600m까지 올라가 캠프를 설치하는 데까지 성공했으나 갑자기 돌풍이 몰아쳐 김기섭 대원이 빙하 틈으로 떨어져 숨졌다.
1972년에는 한국 산악계에서 가장 큰 사고가 일어났다. 김정섭·호섭 형제는 다시 마나슬루를 등정하기 위해 원정대를 조직했지만 거대한 눈사태를 만나 일본인 1명을 포함해 대원 5명과 셰르파 10명 등 모두 16명이 숨지는 참사가 빚어졌다. 이 사고는 1937년 낭가파르밧에 도전한 독일 원정대가 눈사태로 대원 7명과 셰르파 9명을 잃은 이후 당시 두 번째로 큰 인명 피해로 기록됐다.
1979년에는 고상돈 대장이 미국 알래스카의 매킨리(6194m)를 등정하고 하산하다가 추락사했다. 한국에서 ‘산악의 날’은 고상돈 대장이 1977년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를 등정한 9월 15일이다.
1993년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지현옥 대장은 1999년 히말라야 14좌 가운데 자신의 네 번째인 도전이었던 안나푸르나(8091m)에 오른 뒤 “정상!”이라는 짧은 교신을 마치고 하산하다가 해발 7800m 지점에서 실종됐다. 여성으로서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도전한 고미영 대장도 2009년 낭가파르밧(8125m)을 등정한 후 하산하다가 불귀의 객이 됐다.
그리고 이달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등반하던 박영석 대장과 신동민(37)·강기석(33) 대원도 사고로 실종됐다. 대한산악연맹에 따르면 이들은 출발점으로 하강한 뒤 ABC(전진)캠프를 가던 중 플라토(빙탑지역)에서 눈사태를 만나 파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박 대장과 함께 실종된 두 대원은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암벽에 ‘코리안 루트’를 개척한 젊은 산악인들이다. 신 대원은 1m85가 넘는 키에 무척이나 힘이 세 ‘괴력의 사나이’로 불렸으며 박영석 원정대가 에베레스트를 남서벽으로 등정(코리안 루트 또는 박영석 루트)할 때도 선두에 섰다. 강 대원도 그에 못지않은 끈기 덕분에 ‘차돌 같은 사나이’로 불리며 막내로서 궂은일을 도맡아 해왔다. 국내 산악계에서는 한국에서 산악 정신을 고취할 차세대 주자들을 잃었다는 슬픔에 잠겨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