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앵글속엔 없어진 ‘달동네’가 살아있다… 사진작가 안세권 개인전 ‘서울, 침묵의 풍경Ⅱ’

입력 2011-10-30 17:43


하늘 높이 치솟은 아파트 단지와 하늘을 지붕 삼아 옹기종기 모여 앉은 달동네. 개발이 빚어낸 서울의 두 가지 상반된 풍경이다. 현대 도시의 ‘빛과 그림자’로 대변되는 이런 풍경은 비단 서울뿐만 아니라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지역의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달동네는 최신 시설의 초고층 아파트에 자리를 내주면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둘 다 사람 사는 공간인데 정녕 함께 어우러질 수는 없는 것일까. 사진작가 안세권(43)은 이런 관점에서 카메라 렌즈를 맞춘다. 재개발 사업으로 곧 사라질 위기에 놓인 도시의 현재 풍경과 과도한 개발 논리에 밀려 이미 옛 모습을 잃은 도시의 곳곳을 고스란히 필름에 담아낸다. 작가는 모두 비슷한 모습으로 바뀌는 도시 풍경을 통해 획일적인 재개발 문화에 경종을 울린다.

그의 개인전 ‘서울, 침묵의 풍경Ⅱ’가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11월 27일까지 열린다. 성곡미술관의 창작지원 프로그램인 ‘내일의 작가’ 수상 기념전으로 사진과 영상 등 100여점을 선보인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를 나온 작가는 2003년 ‘청계천 프로젝트’를 통해 데뷔한 후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의 현장감 넘치는 풍경과 삶의 모습을 기록해 왔다.

주로 늦은 저녁부터 새벽까지 촬영하는 그의 사진에는 인적 없는 텅 빈 도시의 외로운 모습과 현재 소멸 중이거나 새롭게 생성되는 도시 풍경이 생생하게 살아 숨쉰다. 그의 사진을 보면 따스한 온기가 전해져 오는 느낌이다. 망원렌즈로 사물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촬영한 도시의 밤 풍경 속에는 희미하지만 꺼지지 않는 불빛이 스며들기 때문이다.

작가의 고향인 전북 정읍의 살구나무가 있는 시골집 대문과 농구대를 보여주는 사진 및 영상작품이 애잔하다. 그는 “집은 아직 남아 있으나 마을 앞 논밭에 아파트가 들어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면서 “현상은 사라지지만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풍경을 관람객들과 공유하면서 개발과 추억의 조화를 꾀하고 싶다”고 작업의도를 설명했다.

서울 월곡동의 재개발 과정을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촬영한 ‘서울 뉴타운 풍경, 월곡동의 빛’ 시리즈가 압권이다. 신행교회를 중심으로 오순도순 살아가던 동네가 아파트 건설로 인해 조금씩 사라지다 2년 후에는 교회만 덩그러니 남고 주변은 폐허로 변해버린 풍경이 씁쓸하다. 건설 중인 아파트 18층에서 촬영한 작품으로 이중적인 서울 풍경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밖에 한강변의 아파트촌 풍경과 청계고가가 철거될 당시 현장을 포착한 ‘청계천 프로젝트’ 연작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서울의 모습을 증언하고 있다. 액자 뒤에 조명 장치를 넣어 불빛이 들어오게 함으로써 사진을 감상하는 효과를 극대화했다. 아파트 단지와 판자촌이 공존하는 서울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그의 작품을 통해 그 해답을 찾을 수도 있겠다(02-737-7650).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