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박희선] 참 오랜만의 밥상 정치

입력 2011-10-30 17:34


세상이 변하고 있다. 사회는 언제나 촉수가 많은 자포동물처럼 꿈틀대며 진화하고 있었지만 요즘의 변화는 너무 급작스럽고 격렬하다.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서 거의 금기시됐던 주제인 ‘정치’가 모두의 밥상 위로 튀어 올랐다. 온 가족이, 직장 동료가, 오늘 처음 만난 사람까지 커밍아웃하듯 정치 얘기를 꺼낸다. “난 이 사람이 좋아, 착해 보여서.” 애까지 질세라 한마디 거든다. 조금 통쾌하기도 하고, 너무 급해 멀미가 날 것 같기도 하다.

이 격동의 시대에 주역으로 나선 것은 뜻밖에도 사회적 목소리를 거의 낼 줄 몰랐던 20, 30대 청춘들이다. 아름답다기보다, 찬란하다기보다 어느덧 아프고 불행한 이미지로 대체된 이 시대의 청춘들.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후 그들은 확실히 처량해 보인다. 새롭게 그런 위상에 놓인 게 아니다. 40, 50대의 바쁘고 삭막한 삶 뒤에 가려져 있던 또 하나의 그늘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 것이다.

말 많았던 서울시장 선거가 끝나고 세계 인구가 70억에 임박했다는 뉴스가 귀에 날아와 꽂혔다. 그 중 24세 이하 젊은이가 50%를 차지하고, 청년층에 속하는 20∼39세 인구도 31.21%나 된다고 한다. 꾸준한 평균수명 연장으로 사회의 초고령화를 염려하던 이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뉴스는 불안한 목소리로 이를 전하는 듯하다. 왜? 이들이 앞으로 세계 각지에서 정치 변혁을 주도할 세대이기 때문이란다.

맞다. 젊은 목소리가 집결해 힘을 발휘하고 있는 건 지금 우리나라만의 얘기가 아니다. 미국의 ‘월가 점령’을 주도한 세대도 이들이고, 유럽 많은 도시의 젊은이들도 등록금 낮추라, 직장을 달라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돌아보면 과거에도 늘 뜨거운 가슴을 가진 젊은 세대들이 건강한 사회 변혁을 주도해 왔다.

하지만 이미 기성이 된 눈으로 조금 서글픈 건, 이렇게 파릇한 청춘들이 인류의 정신, 사회의 가치 같은 더 드높은 것을 발언하기 전에 자신들의 밥그릇 문제부터 말할 처지에 놓였다는 점이다. 성장기에 어느 정도의 시련은 사람을 더 단단하게 만들지만 너무 지나치면 사람도 양은냄비처럼 찌그러질 수 있다고, 예전에 어떤 어른이 말씀하셨다. 꽃을 피워야 할 나이에 꽃을 피우지 못해서 슬픈 우리의 청춘들은 어떤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가.

아픔이 아픔을 알아본다고, 인생의 활로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청춘들은 점점 사회의 어두운 곳을 알아보고 마음의 연대를 이어갈 것이다. 반값 등록금, 무상급식, 희망버스, 도가니… 최근 우리 사회에 떠올랐던 이슈들은 정서적으로 끈끈히 연결돼 있다. 이런 연대가 더 길고 높게 이어져 사회를 반쪽으로 동강내기 전에 이제는 기쁨도 아픔을 돌아보는 법을 배웠으면 한다. 사회는 원래 다양한 생각과 서로 다른 이익들이 충돌하며 굴러가는 것이지만 더 아프고 약한 쪽을 감싸 안으며 굽어 흐르는 것이 목표만 향해 직선으로 내달리는 것보다 훨씬 아름답기 때문이다.

박희선(생태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