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지방] 큐레이션
입력 2011-10-30 17:50
먹고 자고 놀고 일하고 심지어 잠깐 딴 생각을 하는 것이 모두 콘텐츠가 되어버린 세상이다. 이효리가 투표하자며 트위터에 강아지 사진을 올린 것만 뉴스가 아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지만 취업에 성공해 기쁘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면 ‘좋아요’ 한번씩 눌러주고, 햇살이 좋아 집 앞 공원에서 찍은 사진 한 장에 살기 좋은 동네라는 댓글이 달린다. 작은 소식이지만 공유하는 사람들에겐 어떤 경제뉴스나 부동산 기사보다 더 중요한 콘텐츠다.
네이버 지식인에는 700만개가 넘는 질문과 1억개가 넘는 답변이 등록돼 있다. 트위터에는 하루에만 2억개의 글이 올라온다. 페이스북에는 매일 2억5000장의 사진이 등록된다. 유튜브에 60일간 올라온 동영상 분량은 미국의 거대방송국들이 지난 60년간 제작한 영상보다 더 많다.
그러니 정보의 양은 문제가 아니다. 아니 과잉이다. 그 많은 정보 중에서 어떻게 내게 딱 맞는 것만 골라내느냐가 중요해졌다.
미국의 대중음악전문 방송국 MTV에 동영상 공유 서비스를 만든 스티브 로젠바움은 이를 큐레이션이라고 명명했다. 미술관의 큐레이터가 작품을 선별해 하나의 주제를 가진 전시회를 선보이듯 쏟아지는 콘텐츠 속에서 유익한 것만 골라 깔끔하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해졌다.
소셜 네트워크 시대에는 누구나 콘텐츠 생산자가 되고 큐레이터가 될 수 있다. 바로 자신의 페이스북 담벼락에 맘에 드는 신문기사의 링크를 올리는 행위 자체가 큐레이션이다. ‘좋아요’ 단추를 누르는 순간 내 담벼락의 큐레이터가 된다.
큐레이션은 이미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페이스북·트위터 등에 올라온 콘텐츠를 마치 잡지책처럼 편집해 보여주는 ‘플립보드’, 한 사람이 선별한 기사를 묶어 뉴스사이트처럼 꾸며주는 ‘페이퍼닷리(paper.li)’ 같은 큐레이션 서비스도 등장했다.
이건 전통적인 미디어만이 해온 일이었다. 하루 종일 일어난 일을 기자들이 선별해 오면 데스크에서 톱기사와 단신으로 골라내 수용자에게 전달했다. 소셜 네트워크 시대에는 누구나 데이터를 선별하는 데스크가 돼 뉴스를 전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큐레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목이다. 안목을 갖춘 사람의 담벼락에는 사람이 몰린다. 반면 아무리 이름 있었던 신문·방송이라도 디지털 시대의 독자를 사로잡을 안목이 없다면 멸종할 것이다. 미국에선 개인 블로그로 시작한 허핑턴포스트가 뉴욕타임스를 이겼다. 미디어 혁명이 가시화되고 있다.
김지방 차장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