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91) 조선시대 보기 드문 부부 초상화
입력 2011-10-30 17:42
지금이야 부부 사진이나 초상화가 흔하지만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부부를 나란히 그린 영정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 사이 음악가로 활동했던 박연(1378∼1458)과 문신인 조반(1341∼1401)의 부부상이 전해지고 있으나 가장 대표적인 것을 들라면 조선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하연(1376∼1453)과 부인 성주이씨의 초상화라 할 수 있습니다.
경상도 진주(지금의 산청)에서 태어나 고려왕조 최후의 충신이었던 정몽주(1337∼1392)로부터 학문을 사사한 하연은 조선 태조(이성계) 때인 1396년 과거시험(병과)에 급제하면서 벼슬길에 오른 뒤 승승장구했답니다. 태종(이방원) 시절에는 사헌부(司憲府) 간관(諫官)으로 일하면서 항상 의연한 자세를 견지해 임금이 직접 손을 잡고 치하할 정도로 인정받은 관료였지요.
1423년 대사헌, 25년 경상도관찰사, 31년 예문관 대제학, 36년 예조와 이조 판서를 거쳐 70세인 45년 우의정에 제수됐으니 영의정 황희(1363∼1452), 좌의정 신개(1374∼1446)와 함께 ‘조선의 빛나는 삼정승 시대’를 연 주역이 됐답니다. 당시 세자 섭정을 하고 있던 문종의 스승으로도 활동한 그는 좌의정을 거쳐 1449년(세종 39) 마침내 영의정에까지 올랐습니다.
그의 부인인 성주이씨는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다정도 병인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의 ‘다정가’로 유명한 고려 말 문인 이조년(1269∼1343)의 5대 손녀랍니다. 성주이씨에게는 조선시대 정(正)·종(從) 1품 문무관의 처에게 주던 최고의 봉작(封爵)으로, 공주·옹주 등과 동격 대우를 받았던 ‘정경부인’이란 호칭이 내려졌지요.
효성이 극진했던 셋째 아들 하우명은 훗날 어머니가 숨지자 3년 모친상을 치른 후 부모의 초상화를 그렸답니다. 이후 이를 바탕으로 그린 모사본이 진주하씨 문중의 백산서원(전북 무주)에 보관되다 1977년 12월 31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81호로 지정됐답니다. 어진(왕의 초상화)도 마찬가지지만 모사본을 제작할 경우 원작은 불태워 없애는 것이 관례랍니다.
백산서원 모사본은 경남 합천과 충북 청원의 영당(影堂)에 전해오는 부부상 모사본에 비해 품격이 월등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또 부인의 의복과 모자는 조선 전기 여인의 의복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맨 윗부분이 뚫리고 좌우의 귀를 덮은 모자 모양은 여인들이 외출할 때 쓰고 다니던 조바위(방한모)의 전신으로 추정됩니다.
국립전주박물관이 남원 출신의 문신 이상길, 고창 출신 무신 강응환, 조선 말 궁중화가 채용신의 인물화와 함께 하연 부인의 초상화 등을 선보이는 ‘전북인의 얼굴’ 전을 내년 1월 29일까지 개최합니다. 보기 드문 조선시대 여성 초상화를 만날 수 있는 기회랍니다. 다만 보관상태가 좋지 않아 하연의 초상화는 출품되지 못했다니 아쉬울 따름입니다.
이광형 문화생활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