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0 성난 민심, 정치권이 달랠 방법은 “결국 복지… 정책·예산 우선순위 바뀌어야”
입력 2011-10-29 01:09
서울시장 선거로 ‘2040세대’(20∼40대)의 분노가 표출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여야를 떠나 정당의 위기가 닥쳐왔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한국 정치는 이 성난 젊은이들을 어떻게 달래야 할까.
선거 이튿날 이 대통령과 정당이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이 대통령은 “젊은 세대의 뜻을 깊이 새기겠다”면서 경호처장에 불통 이미지의 상징인 ‘명박산성’ 어청수 전 경찰청장을 임명했다. 다른 인물을 찾아보자는 내부 권유가 있었지만 결국 ‘내가 아는 사람’을 택했다.
한나라당이 젊은 세대를 겨냥해 내놓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대책은 ‘SNS 명망가 영입’이었다. 문제는 SNS란 도구를 장악하는 게 아니라 그걸 즐기는 이들의 마음을 잡는 것일 텐데 집권여당의 대책은 그랬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를 자기네 당의 승리라고 주장하기 바빴다. 하나같이 말은 2040세대를 챙기겠다는데 뭘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는 듯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조언은 생각보다 명쾌했다.
◇정책 우선순위 바꿔야=명지대 김형준·신율 교수와 서울대 조국 교수가 분석한 2040 세대의 고민은 일치했다. 등록금, 일자리, 전셋값, 보육이 바로 그것이라는 것이다. 신 교수는 “결국 복지의 문제”라고 했다. 세 교수는 모두 “이 고민을 덜어주려면 정책 우선순위가 바뀌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균형재정이 문제가 돼 예산이 부족하다면 돈 쓸 곳의 순위를 바꿔 이 문제부터 해결하라는 것이다.
조 교수는 “젊은이들의 분노는 삶이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이론의 주장대로 시장경제에만 맡겨둔 채 경제성장 효과가 자신들의 삶에까지 미치기를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는 이제라도 경제정책 패러다임을 바꾸면 2040세대에 파고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과거 경제성장 5개년 계획처럼 민생복지 5개년 계획이라도 해야 할 상황”이라며 “현재 예산 가지고도 우선순위를 조정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정책을 통해 말하고 정책은 예산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젊은 세대가 갖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덜어주려면 학자금 융자, 전·월세 연장, 보육 지원 등 관련 예산을 최대한 정교하고 현실성 있게 짜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정당과 국회는 만든 법을 통해 말하는 곳”이라며 “지금은 선거에서 표출된 요구가 최대한 법에 반영되도록 주력해야 할 때”라고 했다.
신 교수는 지난여름 영국에서 발생한 폭동과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를 ‘공황의 조짐’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내년엔 경제가 더 어려울 것이다. 경제위기는 계속될 테고 그 위기는 세계가 함께 겪는 것이어서 우리만 일자리를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 젊은이들이 불안한 건 이 부분이다. 일자리가 생각만큼 생기지 않는다면 먹고살 장치라도 마련해줘야 한다. 그게 바로 2040세대의 복지 요구”라고 했다. 신 교수는 “독일은 엄청난 돈이 드는 통일을 하면서도 완벽에 가까운 복지시스템을 유지했다. 이건 돈이 아닌 우선순위의 문제”라고도 했다.
◇말은 필요 없다. 느낄 수 있어야 한다=소통 부재 문제에 대해선 현 정권과 정치권에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비관론도 나왔다. 연세대 양승함 교수는 “소통은 사람과의 교류다. 사람을 쓰는 인사정책 자체가 편협해 현 정권에선 (개선이) 어렵다고 본다”고 했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도 “2040세대를 정치로 달래줄 방법은 있을 것이다. 정치로 뭘 못하겠나. 그러나 이 정권에선 힘들 것”이라며 “젊은 세대의 감성과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청수씨를 임명하는 걸 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정치권이 지금처럼 해선 젊은 세대에게 절대 감동을 줄 수 없다고 단언했다. 정치권 밖에서 갑자기 등장한 이들에게서 지지율 50%(안철수)가 구구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지지율 5%(박원순)에게 양보하는 충격적 상황을 목격한 터여서 이제 감동의 기준이 더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는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SNS에서 열광하는 것이지, SNS 많이 한다고 감동을 주는 게 아니다”며 정치권이 젊은층에서 신뢰받지 못하는 이유로 말과 행동의 차이를 꼽았다. 신 교수는 “공정한 사회를 말하면서 불공정한 행동을 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얘기하면서 방송 프로그램 하나까지 간섭하고, 소통을 말하면서 시청 앞 광장에서 집회도 못하게 하는 이중적 태도론 정치의 진정성을 느끼게 할 수 없다”고 했다.
조 교수는 “2040세대는 80%가 대학에 진학해 교육 수준이 대단히 높은 세대다. 그들을 몇 마디 말로 설득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번 선거에서 색깔론이나 네거티브가 먹히지 않은 게 증거다. 진정성은 체감되는 정책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MB, 국회 찾아가야=이 대통령은 27일 선거 관련 언급을 통해 향후 국정운영 방식에 변화가 있을 것임을 예고했다. 김 교수는 “대통령이 무조건 국회에 찾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정운영의 변화를 보여주는 가장 빠르고 상징적인 길이란 것이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둬왔다. 시정연설도 직접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올 들어선 한번도 국회를 방문한 적이 없다. 최근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관한 국회연설을 하려다 야당 반대로 무산됐다. 신 교수는 “이젠 정치를 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로 가서 국회의장, 여야 대표와 마주앉아 국민의 말을 들을 때”라고 했다.
태원준 백민정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