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저편 이방인들의 고독·그리움 녹여… 임윤 시집 ‘레닌 공원이 어둠을 껴입으면’

입력 2011-10-28 17:53


시집 ‘레닌 공원이 어둠을 껴입으면’(실천문학사)을 펴낸 임윤(51·사진) 시인은 오랫동안 연어 사업을 위해 사할린과 쿠릴 열도와 중국 옌볜으로 떠돌았다. 그런 만큼 그는 변방을 떠도는 재러 고려인과 재중 동포와 탈북 이주민들을 자주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현대사가 낳은 이방인이자 비극의 주인공인 그들의 비의성에 각별히 주목한다.

“멀찌감치 인파를 헤치며 노파가 다가온다 경상도 어느 바다가 고향이라며 손을 부여잡는다/ 젓갈 냄새만 기억하는 노파, 세월 지나도 잊지 못할 보리밥덩이에 얹어먹던 곰삭은 젓갈/ 샛강 거슬러 오를 날 기다리며 지느러미 꺾을 때까지 태생의 냄새 기억할 카레이스키 연어들”(‘멸치 젓갈’ 부분)

사할린 공항에서 만난 이 노파야말로 이제는 화석화된 역사의 흔적이 아닐 수 없다. 노파의 유랑에서 자신의 유랑을 보는 시인은 자신 또한 국경 너머를 떠도는 또 다른 이방인임을 절감한다. “노파는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지만/ 젖먹이 때 만주로 이주해온 뒤/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단다/ 서울 어디선가 막노동한다는/ 아들 소식은 묘연하단다/ 키보다 한 뼘 짧은 뒷방에 누우니/ 맨발이 문턱에 걸린다”(‘이도백하에 내리는 눈’ 부분)

사할린에서 연어 통조림 공장을 운영하는 시인은 옆 공장의 탈북자에게 컵라면을 건네주던 경험을 이렇게 추스린다. “끓는 물 붓고 오 분 후에 먹으면 된다고 내민 컵라면/ ‘일없습네다 머거딘 가면 국수래 많이 있디요’/ 아직 라면 없는 곳이 너무도 많은 조선 팔도, 처음 봄 직한 컵라면을 한사코 사양한다.”(‘우리들의 대화법’ 부분)

시인의 관심은 “봉천동에서 회갑 맞이한 박씨/ 막노동으로 굵어진 손마디가 옹골지다/ 수년 째 식당에 다니는 아내와/ 칭다오에서 동생 내외까지 합석한 아침/ 환갑은 무슨 환갑이냐며 손사래 친다”(‘황사’ 부분)처럼 국경 안쪽, 즉 한국에 머물고 있는 이방인에게도 확장된다. 임윤은 이렇듯 그리움과 외로움의 심상을 시에 투영함으로써 국경이라는 경계를 허물고 있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