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인도, 신화로 태어나다… 살만 루슈디 두 장편 ‘한밤의 아이들’ ‘수치’
입력 2011-10-28 17:52
‘악마의 시’로 영국과 이란의 국교 단절을 야기하는 등 세계적인 충격을 던져주었던 인도 출신 작가 살만 루슈디(64)의 또 다른 대표작 ‘한밤의 아이들’(전2권·문학동네)과 ‘수치’(열린책들)가 나란히 번역돼 나왔다. 인도에서 태어나 파키스탄에서 자랐고 영국에서 교육받은 루슈디는 자신의 성장과정을 두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시키며 만물의 경계에 선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계의 균열에 대해 들려준다.
‘한밤의 아이들’(1981)은 마치 ‘천일야화’의 문학적 전통을 이어받듯 “나는 봄베이 시에서 태어났는데… 옛날옛날 한 옛날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신화와 역사, 환상과 현실의 세계를 넘나든다. 1947년 인도 독립 순간에 태어난, 신비로운 능력을 지닌 1001명 아이들의 탄생을 전제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그중 12시 정각에 태어나 신생 독립국 인도와 운명을 함께하게 된 살림 시나이의 서른 해를 그리고 있다.
“나는 인도가 독립하는 바로 그 순간에 이 세상으로 굴러나왔다. 사람들이 놀라서 헉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창밖에는 불꽃놀이와 군중이 있었다. 몇 초 후, 우리 아버지의 엄지발가락이 부러져버렸다. 그러나 그날 밤 그 순간에 나에게 일어난 일에 비하면 아버지의 사고는 하찮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덤덤하게 나를 맞이했던 그 시계들의 어떤 신비로운 횡포 때문에 나는 불가사의하게 역사에 손목이 묶여버렸고 나의 운명은 조국의 운명과 하나로 이어져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기 때문이다.”(1권 25쪽)
화자(話者)인 살림은 밤마다 “옛날옛날 한 옛날에”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인도 역사를 자전적으로 쓰고 있는데, 그 글쓰기 과정을 피클공장의 유능한 일꾼이자 연인인 파드마에게 들려주는 형식을 띄고 있다. 파드마는 ‘한밤의 아이들’이 지닌 신비로운 능력(보는 이의 눈을 멀게 하는 미모, 말로 사람을 해치는 거친 입 등)에 얽힌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의심한다. 하지만 살림으로 하여금 역사적 사실을 점검하고, 무엇보다도 이야기가 계속될 수 있도록 그를 독려한다. 마지막 장에 이르러 살림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 책의 각 장으로 피클을 만들었다. 오늘 밤 내가 특별 조리법 30번: ‘아브라카다브라’라고 적힌 병에 뚜껑을 단단히 닫으면 마침내 이 기나긴 자서전이 끝나게 된다. 나는 언어와 피클을 이용하여 내 기억을 영원하게 만들었다.”(2권 454쪽)
소설 ‘수치’(1983)는 까마득한 국경 마을 Q에 살고 있던 세 자매의 아들 오마르 하이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하이얌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자신의 진짜 어머니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태어난다. 어머니들로부터 수치심을 느끼는 것을 금지당한 그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인지조차 못 하는 상태로 성장해 의사가 된다. 그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여인 수피야는 아들이 태어나길 고대하던 부모의 기대를 저버린 탓에 태어나면서부터 ‘가문의 수치’라는 오명을 쓰게 된다.
“어디를 둘러봐도, 부끄러워 마땅한 것들이 보였다. 그러나 수치는 다른 모든 것과 다를 게 없다. 한참 같이 살다보면 가구의 일부가 되기 마련이다. 국방(파키스탄 국방장교 생활협동주택협회)에서는 어느 집에서나 수치를 찾을 수 있다. 재떨이에서 타고 있기도 하고, 벽에 표구되어 걸려 있기도 하고, 침대를 덮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도 더 이상 눈여겨보지 않는다. 그리고 모두가 문명화되었다.”(36쪽)
제목에서 드러나듯 ‘수치’가 폭력의 기원일 수 있다는 화두를 꺼내든 소설은 수치를 전혀 못 느끼는 오마르 하이얌와 너무도 민감하게 수치를 느끼는 수피야 지노비아를 내세워 ‘후안무치’와 ‘수치’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루슈디에게 ‘수치’란 영어 ‘shame’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에게 ‘수치’란 파키스탄어 ‘샤람(sharam)’을 의미하는데 이는 ‘번역할 수 없는 모국어’라는 의미로 확장된다. 모국어 대신, 더럽혀진 식민 지배의 언어인 영어로 글을 써야 하는 루슈디 자신의 디아스포라적 숙명을 내포하고 있는 작품이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