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교회를 도웁시다-국민일보·세복협 공동캠페인] 경기 부천 하나로교회

입력 2011-10-28 17:34


월세마저 5개월째 밀린 탈북자들의 쉼터

“많이 힘드네요. 탈북자 교회라 더 힘든 것 같아요. 남북한의 평화통일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부천시 원종동 하나로교회 조은성(44) 목사는 개척교회 목회 생활이 꽤 힘든 듯했다. 조 목사 역시 탈북자 출신이다.

조 목사는 2009년 6월 이 교회를 개척했다. 복음을 전하고 남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탈북자들에게 직장을 알선하고 각종 상담을 해 주는 것이 주된 사역이다. 특별히 북한 선교는 가장 중요한 창립 목적이다. 교인들은 인근 복지관에서 시각 및 지체 장애인에게 목욕과 수발 등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소외 어린이들에게 방과후교실도 열어주고 있다.

조 목사는 월세 50만원에 교회 건물을 임대했다. 상가건물 4층에 100㎡(약 30평)의 작은 규모지만 개척 2년여 만에 60명 성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교인이 늘면서 조 목사의 걱정도 늘어만 간다. 예배 공간이 비좁다보니 주일날이면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있을 공간이 마땅치 않다. 또 나이 드신 어른들은 4층까지 걸어 올라오기 힘들어하신다. 교회에서 돌보는 미혼모의 자녀도 8명이나 된다. 이들에겐 옷과 우유값이 필요하다. 대부분 형편이 어렵다 보니 자연스레 교회 재정도 열악하다. 월세가 5개월째 밀려 있는 실정이다.

조 목사의 탈북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청진사범대학을 졸업한 그는 7년간 김일성 체제를 가르치는 역사 교사로 일했다. 하지만 굶어 죽어가는 제자들을 지켜보면서 북한 체제를 의심하게 됐다. 조 목사의 손을 잡고 죽음을 맞은 제자도 있었다.

무엇보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부모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어렴풋이 알게 됐다. 조 목사 가정은 3대째 이어오는 기독교 가정이었던 것이다. 자연스레 대학에서 배운 북한 역사를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1997년 2월 탈북했다. 중국에서 농사일, 양치기, 돼지우리 청소 등 온갖 막노동을 하며 지냈다. 의지할 데 없이 중국 공안을 피해 다니기 4년. 어머니의 인도로 지린성 옌볜의 어느 교회에 들어갔다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령을 체험하게 됐다.

성경을 읽고 또 읽었다. 내 죄 때문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하니 연신 눈물이 나왔다. 북한 청소년들에게 ‘기독교는 우리 사회주의를 좀 먹는 반동의 원흉’이라는 사상교육을 시킨 죄도 회개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깨닫게 됐다.

어머니가 북한군에 잡히기 직전, 주의 종이 되길 유언했다. 2001년 7월 천신만고 끝에 남한에 온 그는 어머니의 유언대로 목회자가 됐다. 예장 개혁 총회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해 2008년 8월 목사 안수를 받았다.

조 목사는 탈북 성도들이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신앙으로 잘 정착하도록 한국교회의 도움을 요청했다.

“남한에 들어온 탈북자가 2만3000여명을 넘어섰습니다. 한국교회는 이제 탈북 동포들을 위한 신앙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통일 선교사’로 거듭날 것입니다.”

◇어려운 교회들은 청원서, 교회(자기)소개서와 기타 서류를 제출하면 이를 취재해 보도하고 후원자들의 명단은 지면에 소개됩니다.

◇성금자 명단 (단위:원)

△강은주 100만 △구로순복음교회 50만 △강원길 20만 △권중석 10만 △안준학 10만 △박길성 10만 △장은미 10만 △박성심 10만 △김우종 5만 △황창연 5만 △김정수 5만 △안정란 5만 △허 훈 5만 △복음에 빚진자 5만 △강정숙 3만 △최정아 3만 △문성주 3만 △김화덕 2만 △조기일 2만 △김덕자 2만 △최순영 2만 △박경희 2만 △전종환 1만 △이복열 1만

◇후원금 접수

국민은행 538801-01-295703(예금주 한영훈-세복협)

신한은행 100-026-263928(예금주 한영훈-세복협)

◇문의 및 서류접수

세계복음화협의회(02-2608-0111)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