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자 아유다이 오치르 “몽골서 발굴 고구려 양식 벽화 등 6∼7세기 교류 증거 여러 곳에서 나와”
입력 2011-10-27 19:49
27일 오전 10시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에서는 작은 발굴 보고회가 열렸다. 몽골의 대표적 고고학자 아유다이 오치르(63) 몽골유목문화연구소장이 지난 7∼9월 몽골 중부 ‘볼간 아이막 바양 노르 솜’에서 진행한 서기 600년 무렵 벽화묘 발굴의 성과를 공개하는 자리였다. 몽골에서 벽화가 그려진 고분이 발굴된 건 처음이다. 게다가 찾아낸 벽화 40점 중 일부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청룡(靑龍) 백호(白虎) 등과 닮아 관심이 컸다.
벽화와 유물 사진이 하나씩 공개되자 한국 전문가 10여명이 앉은 객석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특히 용 머리에 호랑이 몸통을 가진 상상동물 그림은 고구려 사신도와 흡사했다.
아유다이 소장은 “2006년 중국 지린성에서 고구려 고분 200여기를 둘러봤는데 이번에 발굴된 벽화가 그때 본 고구려 벽화와 흡사하다.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40점 중 4점은 확실히 고구려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반면 중국과의 관련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그는 “7세기 중기면 당나라 때인데 용 모양이 이렇지 않다. 중국 학자도 (현장에 와서 보고) ‘중국 스타일이 아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유물에서도 고구려 흔적은 드물지 않게 발견됐다. 무덤 내부에서 찾은 토우(土偶·흙으로 빚은 상) 100여점 중 인물상이 걸친 의상은 고구려 고분벽화의 치마, 모자와 흡사했다.
사신도를 닮은 고분벽화가 중국 땅 대신 몽골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고구려 벽화가 중국보다는 북방 유목문화와 더 깊이 관련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간 고구려 벽화는 중국 남북조 혹은 수·당나라에 영향 받은 것으로 해석돼 왔다.
13세기로 추정되던 한·몽 관계의 시작도 600년이나 앞당겨지게 된다. 아유다이 소장은 “고구려와 몽골이 6∼7세기부터 교류했다는 증거가 최근 여러 곳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2009년에는 몽골 중부에서 발해와 관련됐던 말갈족의 비문이 나왔고, 얼마 전에는 중심부에서 11세기 초 발해인 거주지가 발굴됐다. 발해는 고구려 유민이 세운 나라다. 그는 “고구려 사람들이 만리장성 너머 북방 초원에 살던 유목민과 자주 긴밀하게 왕래하고 문화적 친연성도 높았다는 추정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아유다이 소장은 한국 학자들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처음 벽화를 찾아냈을 때 기쁨과 감격은 말로 표현 못합니다. 정말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고민이 많아졌어요. 유목민에게 그런(벽화를 그리는) 문화가 있었는데 우리가 몰랐는가, 만약 외부에서 온 문화라면 어디서 왔나, 풀어야 할 숙제가 아주 많습니다. 발굴과 보존, 모든 면에서 앞서 있는 한국이 함께 나서줬으면 좋겠습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