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재보선 후폭풍] 선거 패배는 “내 탓 아닌 남의 탓”… 한탄만 하고 대책 없는 한나라

입력 2011-10-27 18:37

“진짜 머릿속이 하얗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다음날인 27일 기자와 만난 서울지역의 한 한나라당 초선의원은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서울 의원들과 점심을 함께 했는데 답답해하고 한탄만 하지 다들 대책은 없어 보이더라”고 전했다.

한나라당 서울 의원들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 8·24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직후 홍준표 대표는 당시 투표율 ‘25.7%’를 거론하며 “지난번 (6·2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시장의 득표율(25.4%)에 비춰보면 주민투표 득표율은 굉장히 의미 있는 수치”라며 “사실상 오 시장이 승리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당시 서울 의원들 일부도 주민 투표에 참여한 25.7%, 약 216만명의 유권자가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면 “유리한 국면이 될 것”이란 해석도 내놨다. 그러나 두 달 후 치러진 서울시장 보선에서 나경원 후보를 찍은 유권자는 186만7880명에 불과했다. 무소속 후보로 나선 박원순 시장보다는 29만여표가 적다. 48개 지역구별로 평균 6000여표 뒤졌다는 결론이 나온다.

또 다른 서울 의원은 “보선 결과대로라면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을 의원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 의원들은 지도부 책임론을 거론하진 않았다. 이렇다할 대안이 없고, 과거 사례를 볼 때 지도부 물갈이가 근본적 민심 수습책이 되지 못한다는 판단에서다. 총선을 6개월 앞둔 상황에서 공천이 걸려 있어 지도부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원희룡 최고위원은 기자들과 만나 “고민해야 할 사람들의 고민이 부족하다”며 “대선주자는 대세론에 안주하고 당직자는 당권에, 의원들은 공천에 목을 매는 상황에서 어디서 동력이 나오겠느냐”고 언급했다.

반면 이명박 정권, 즉 청와대로 화살을 돌리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권영진 의원은 초선 모임인 ‘민본 21’ 회의에서 “선거 분위기가 옛날 탄핵 때랑 비슷하다”며 “나쁜 선거환경을 선거운동으로 극복할 수 없고 정권 심판론을 인물론으로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애초부터 정권에 대한 민심이반으로 이기기 힘든 선거였다는 얘기다.

당 지도부도 “사퇴만이 답이 아니다”는 결론 속에 대대적인 ‘당 개혁을 통합 수습’으로 방향을 잡았다. 홍준표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앞으로 당 개혁과 수도권 대책에 주력하겠다”며 반(反)한나라당 정서를 표출한 20∼40대와의 소통을 우선 과제로 꼽았다.

지도부 책임론을 언급할 것으로 예상됐던 원희룡 최고위원은 “누가 누구를 탓하는 책임론의 차원은 벗어나야 한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다음주 초 ‘세대간 대결’의 선거구도에서 탈피하고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한 ‘젊은층 콘텐츠’ 강화 방안 등이 담긴 당 쇄신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홍 대표가 완전히 책임론을 비켜난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많은 의원들은 홍 대표가 재보선 결과에 대해 “이겼다고도 졌다고도 할 수 없다”고 말한 데 대해 “오만, 자가당착”이라고 비판했다.

정두언 의원은 트위터 글에서 “서울은 졌으나 다른 곳은 모두 이겼다? ‘셧 더 마우스’(Shut the mouth)”라며 “아내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자는 말이 새삼 절실한 시점”이라고 했다.

한장희 유동근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