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서 코믹 진수 김상호 “내 연기보고 사람들 행복했으면…”
입력 2011-10-27 17:54
TV 드라마 ‘시티헌터’에서 시티헌터 이윤성(이민호)과 함께 사는 외항선 요리사 출신의 배식중, ‘반짝반짝 빛나는’에서 털털하고소박한 성격의 제약회사 영업사원이자 태란의 남편 박중혁, 영화 ‘적과의 동침’에서 약삭빠른 산골마을 주민 백씨, ‘모비딕’에서 정의감이 충만한 특종 기자 손진기, ‘챔프’에서 말을 다루지 못하는 코믹한 기마경찰.
‘명품 조연’으로 불리는 김상호(41)가 올해 TV와 스크린을 오가며 연기한 배역들이다. 조연급이지만 극의 흥미를 높이는 비중 있는 역할들이다.
데뷔 이후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가 아직도 멀었다는 듯이 또 팬들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지난 20일 개봉해 박스오피스 1위를 질주하고 있는 영화 ‘완득이’에서다. 70만부가 넘게 팔린 김려령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에서 그는 완득이와 동주 선생 등 이웃들에게 걸핏하면 욕을 퍼부어대는 동네 아저씨로 나와 코믹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밤무대에서 춤과 웃음을 팔아 생계를 꾸려온 장애인 아버지, 젖을 뗀 아이를 두고 집을 나가버린 필리핀 출신 어머니, 공부는 꼴찌이고 걸핏하면 주먹질인 사고뭉치 고교생,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에 떠는 외국인 불법 체류자들…. 김상호는 이런 무거운 소재들이 즐비한 ‘완득이’가 관객들에게 유쾌한 영화로 받아들여지는 데 한몫 단단히 했다는 말을 듣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상호는 ‘명품 조연’이라며 덕담을 건넸더니 정색하며 “그런 호칭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앞에 수식어가 붙어야 나를 드러낼 수 있다는 뜻 아니냐. 나는 그저 배우 김상호가 좋다”고 했다.
그는 욕쟁이 옆집 아저씨란 캐릭터에 대해 “원작 소설에서 그대로 가져왔는데 자기감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욕으로 뱉어내는 캐릭터다. 욕이 너무 과해 까칠하게 비쳐질 수 있는데 다행히도 관객들이 유쾌하게 받아들여 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욕은 잘해봐야 본전’이라는 말이 있어요. 욕에는 독(毒)이 있거든요. 촬영하면서 그 독을 어떻게 빼낼지를 고심했지요.”
‘완득이’를 서민들의 삶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아낸 ‘동네영화’라고 설명한 그는 서울 대학로 극단에 몸담고 있던 시절 산동네 옥탑방에서 살았는데 촬영하면서 그때가 많이 생각났다고 했다. 그는 “‘완득이’는 스산한 이 가을에 보기에 알맞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라며 “관객들이 지친 마음과 스트레스를 풀고 힘도 받아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상호는 장르와 캐릭터를 가리지 않는 ‘전천후 배우’다. 소탈하고 친근한 캐릭터들을 많이 소화했지만 진지하고(‘모비딕’의 손진기), 살인을 저지르려는 악인(‘이끼’의 전석만) 역도 잘 어울린다. 그는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재미’를 꼽았다. “장르나 내 배역은 상관없어요. 대본이 술술 잘 넘어가야 해요. 그래야 재미있는 거죠. 아무리 좋은 캐릭터라도 작품이 재미 없으면 사랑받기 어렵잖아요.”
그는 1994년 연극 ‘종로 고양이’로 데뷔했다. 고향(경북 경주)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92년 서울로 무작정 올라와 대학로에서 포스터 붙이는 일을 하다 94년부터 연극 무대에 섰다. 연극을 하게 된 특별한 동기는 없다고 했다.
“그 전에 감명 깊게 본 작품이나 좋아하는 배우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이끌어 준 선배도 없었어요. 어느 날 보니까 제가 연극을 하고 있더라고요.”
10여년의 ‘춥고 배고픈’ 대학로 시절을 거친 그는 2004년 영화 ‘범죄의 재구성’에서 화폐위조 기술자 휘발유 역으로 출연하며 주목 받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즐거운 인생’에서 아내와 자식들을 유학 보낸 기러기아빠 혁수로 열연해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다음 달에 또 안방극장 팬들을 찾아간다. 영화전문 케이블 채널 OCN에서 다음 달 18일부터 매주 금요일 심야에 방송되는 10부작 드라마 ‘특수사건전담반 TEN’에 출연하는데 이번에는 당당한 주연이다. 검거 가능성이 10% 미만인 강력범죄를 맡아 수사하는 전담반에서 24년 경력의 베테랑 형사 백도식으로 나와 주상욱(전 광역수사대 최고 에이스), 조안(범죄분석요원), 최우식(신참형사) 등과 호흡을 맞춘다.
그는 “주연은 처음이라 기쁘지만 그게 내 목표는 아니다. 주연은 언젠가는 거쳐 갈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내 목표는 그 너머 너머에 있다”고 말했다. 그 너머에 있는 게 뭐냐고 묻자 그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제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라는 말을 듣는 겁니다. 아이들이 제가 출연한 작품, 제 행적을 보면서 ‘우리 아버지는 참 멋진 분이셨구나’라고 생각하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제 작품을 보고 즐거워했으면 좋겠고요.”
라동철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