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유석렬] 개성공단, 남북관계 물꼬 트나

입력 2011-10-27 17:37


요즘 개성공단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오는 11월 남북 관계에 돌파구가 될 만한 좋은 뉴스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 발언’을 한 것이나, 정부가 통일부 장관을 교체한 것이 그런 느낌을 준다. 홍 대표는 9월 30일 개성을 방문해 개성∼개성공단 도로 보수와 출퇴근 버스 확대, 개성공단 건축공사 재개 등을 건의하겠다고 했다. 정부도 이를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성공단은 북한으로서는 사활이 걸린 생명선이나 다름없다. 당장 필요한 현금과 보위부가 선발한 4만명 핵심 계층 근로자의 생계를 책임져주고, 나진·선봉 사업과 신의주특구 개발이 무산된 상황에서 경제의 마지막 보루가 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북한 직장장이 모든 작업과 인사에 직접 개입할 수 있고 매일 아침 1시간30분가량 사상교육을 할 수 있어 우려했던 외부 바람을 차단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 근로자들에게 지급되는 임금을 사실상 북한정권 마음대로 쓸 수 있다. 북한은 남북관계가 아무리 나빠도 개성공단을 폐쇄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북한이 개성공단 사업과 관련해 정작 원하는 것은 현금이 아니다. ‘6·15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북측은 개성공단 사업과 관련, “남측에 땅값과 노임을 낮게 정해주는 등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경영 조건을 부여해준 것이 특혜 중의 특혜”라며 이는 남측이 6·15와 10·4 공동선언을 이행하는 전제 밑에서만 지속의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 정부가 이러한 선언을 확실하게 이행하고 ‘퍼주기식’ 지원을 다시 시작하지 않는 한 이명박 정부와 진정한 관계 개선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금 북한이 원하는 것은 경제 파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전적인 경제 지원이지 개성공단 사업을 확장시켜 단지 관계 개선을 하겠다는 것이 아님에 유의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3년반 동안 그런대로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북한의 악한 행동에는 응징이 있을지언정 보상은 없다는 확실한 원칙이 바로 그것이다. 북한이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분명한 시인과 사과, 그리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는 것은 당연하다. 이 원칙 때문에 남북 관계가 그동안 삐걱거렸음을 북한도 이제는 인정하고 있다. 정부의 확고한 원칙이 북한을 변하게 하는 가장 아픈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철학과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채 대북 원칙을 임의로 변경한다면 남한의 임기 말 정권의 생리와 한계를 잘 알고 있는 북한이 펴놓은 덫에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정부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남북 합의서를 보완·정비해야 할 것이며, 개성공단 투자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국제협력 및 국제기구 등을 통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유석렬 외교협회 정책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