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진홍] 위기가 아니라 기회 아닐까?
입력 2011-10-27 17:36
‘소용돌이’ ‘회오리’ ‘쓰나미’ ‘빅뱅’ ‘핵폭풍’ ‘격랑’ ‘태풍’…. 언론들이 10·26 서울시장 선거를 평가하면서 사용한 단어들이다. 진보적 시민사회세력의 지지를 받고 출마한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제1야당인 민주당과의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에 이어 거대 여당인 한나라당과의 본선에서 잇달아 승리했으니 정치권이 요동칠 것이라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최초의 무소속 서울시장 탄생에는 ‘기존 정치권이 싫다’는 서울 민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에 틀린 얘기가 결코 아니다. 내년 총선을 불과 6개월여 앞두고 확인된 ‘성난 표심’으로 기존 정치권에 예사롭지 않은 위기감이 감돌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민정치 토양 취약해
서울시장 선거는 소위 시민정치의 확장을 알리는 서막이다. 그 중심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박원순 시장이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통해 한나라당이 장악하고 있는 의회권력과 정부를 바꾸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한 수단은 야권 대통합이다. 박 시장이 “민주당 중심으로 통합과 연대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듯 야권 통합 움직임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그러면 민주당은 안전한 걸까? 아니다. 그제 밤 개표 과정에서 당직자들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자신들이 지원한 후보가 당선됐음에도 대놓고 기뻐할 수 없는 게 민주당 처지라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야권 통합의 주도권 때문이다. 박 시장은 ‘민주당 중심으로’라고 했으나, 기세가 오른 시민사회세력이 민주당보다 목소리를 낮출 가능성은 크지 않다. 주도권을 빼앗기면 궁극적으로 차기 대선에서조차 후보를 내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예상된다. 현재로선 안철수에 대적할 만한 대선주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에 빠졌다.
한나라당은 훨씬 심각하다. 심하게 말하면, 구(舊)정치의 상징이 돼버렸다. 개표 결과를 보면 ‘203040’(20대부터 40대) 세대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를 이만큼 발전시킨 ‘5060’의 지지를 받고 있으나 ‘미래가 없는 정당’이라는 평가를 면키 어렵다. 자신들을 지지하는 보수세력만 껴안고 즐거워했을 뿐 다수 국민들을 위해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부족했던 탓이다. 전선도 한나라당 대 반(反)한나라당으로 고착되고 있다. 이대로는 차기 총선과 대선은 치르나마나 아닐까 싶다.
정당정치라는 시스템의 위기는 아니지만 정당의 위기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위기는 위기라고 인식되는 순간 이미 위기가 아니며 기회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절대 극복하지 못할 위기는 없다.
정당 발전 호기로 삼아야
서울시민들이 분노한 것은 민심과 동떨어진 정당들의 행태가 주요인이다. 따라서 정당들이 진정성을 갖고 변모하면 민심을 다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내부의 지적대로 새로 창당하는 심정으로 모든 것을 바꾸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인적 쇄신과 당 운영 방식의 혁신도 포함된다. 우리는 6월 항쟁과 같이 정당이 시민사회세력과 연대함으로써 민주화를 앞당긴 역사를 갖고 있다. 정당이 민주화세력을 영입해 정당 체질을 업그레이드시키기도 했다. 그때처럼 정당들이 각계각층 시민들에게 문호를 활짝 개방함으로써 시대변화에 어울리는 정당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호기가 주어진 것으로 현 상황을 평가하고 싶다. 위기가 아니라 정당과 정당정치를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세력이 큰소리치는 것은 반(反)정치, 비(非)정치라는 국민 정서에 편승한 측면이 강하다. 그만큼 이들의 토양이 탄탄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당들이 더 정신 차려야 하는 이유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