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黑山
입력 2011-10-27 17:34
김훈 소설은 이렇게 묘사한다. “거기, 그렇게 있을 수 없는, 물과 하늘 사이에 흑산은 있었다. 사철나무 숲이 섬을 뒤덮어서 흑산은 검은 산이었다. 멀리서부터 검푸른 숲이 뿜어내는 윤기가 햇빛에 번들거렸다.” 이런 대목도 있다. “흑산은 마을마다 바람을 맞는 방향이 달라서 집들의 좌향이며 아궁이, 고래, 굴뚝의 방향이 마을마다 달랐다.”
흑산도의 행정구역은 전남 신안군 흑산면이다. 목포에서 쾌속선으로 1시간반이 걸리는 고도. 섬 하나가 면을 이루고 있으니 규모가 큰 편이다. 25㎞ 해안일주 도로가 있을 정도다. 홍어가 유명하지만 요즘은 전복양식으로 큰돈을 만진다. 조기 어장을 찾아 수백 척의 중국 어선이 떼로 몰려드는 곳이기도 하다.
섬의 존재는 이미자의 노래로 널리 알려졌다. 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의 노래는 흑산도에 흘러든 술집 아가씨의 애환을 담았다.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바라보다 검게 타 버린/검게 타 버린 흑산도 아가씨.” 노래가 나온 1967년 무렵에는 파시(波市)가 성행해 유흥업이 번창했고, 육지에서 돈 벌러 온 여성이 많았다고 한다.
김훈 작품에 등장하는 손암(巽庵) 정약전(丁若銓)의 흔적도 자산이다. 병조좌랑 벼슬을 하던 손암은 1801년 11월 황사영백서사건의 여파로 이곳에 유배되어 15년 살다가 1816년에 죽는다. 이때 쓴 책이 ‘자산어보(玆山魚譜)’다. 비늘 있는 고기 73종, 비늘 없는 고기 42종, 조개류 69종, 기타 해조류 43종 등 227종의 수산 동식물의 생태를 기록한 기념비적 저작이다.
손암이 ‘자산어보’에 흑산 대신 자산을 쓴 이유를 적었다. “자산은 흑산이다. 나는 흑산에 유배되어 있어서 흑산이란 말이 무서웠다. 玆는 黑과 같다.” 김훈도 ‘黑山’에서 이 부분에 주목했다. “나는 흑산을 자산으로 바꾸어 살려 한다. 자는 흐리고 어둡고 깊다는 뜻이다. 흑은 너무 캄캄하다. 자는 또 지금, 이제, 여기라는 뜻도 있으니 좋지 않느냐. 자 속에는 희미하지만 빛이 있다.”
정약전은 포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서당을 지어 아이들을 가르쳤다. 서당은 지금도 남아 있다. 무덤은 천진암으로 옮겨갔지만 제자이자 ‘자산어보’ 저술의 파트너인 섬사람 장창대는 묘비 없는 봉분을 남겼다. 흑산도는 노래에 이어 스타작가의 문학 현장이 되어 장소의 무게를 더하게 됐다. 사람과 역사 사이에 있는 흑산도, 그 섬에 가고 싶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