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10·26 재보선] 젊은층 박원순, 노년층 나경원 ‘靑박老나’…넥타이부대 퇴근 투표가 승부 갈라
입력 2011-10-27 01:18
무소속 서울시장을 탄생시킨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세대 간 표 대결 양상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특히 2006년 이후 세 번의 서울시장 선거를 거치면서 서초·강남·송파 등 강남3구의 한나라당 몰표 현상이 현저히 약화된 것으로 나타나 한나라당의 아성인 강남이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강남 몰표 누른 세대 투표=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 박 후보는 강북 동·서, 강남 동·서의 서울 4개 권역 중 강남 동부(서초·강남·송파·강동구)에서만 7.9% 포인트 차로 졌다.
강남 동부 득표율은 나 후보가 53.2%, 박 후보가 45.8%였다. 대신 박 후보는 나머지 3개 권역에서 12~16% 포인트씩 나 후보를 따돌렸다. 강남3구는 지난해 6·2 지방선거에 이어 이번에도 한나라당 후보에게 많은 표를 던졌지만 결집력이 떨어졌고 당시 오세훈 후보에게 승리를 안겨줬던 ‘강남 몰표’는 되풀이되지 않았다.
이는 세대 투표의 결과라는 분석이다. 나 후보는 50~60대에서 박 후보를 눌렀지만 20~40대 유권자의 압도적 지지를 얻은 박 후보에게 완패했다.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 20대는 69.3% 대 30.1%, 30대는 75.8% 대 23.8%, 40대는 66.8% 대 32.9%로 모두 박 후보가 더블스코어 이상 앞섰다. 특히 30대에선 박 후보가 나 후보보다 3배나 많이 득표했다. 반면 50대는 43.1% 대 56.5%로 나 후보가 13.4% 포인트 리드했고, 60대에선 30.4% 대 69.2%로 배 이상 많은 표를 얻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세대 투표는 2002년 대선에서 두드러졌다가 지난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약화되는 듯했다”면서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20~40대는 진보적 야권 후보를, 50대 이상은 보수적 여권 후보를 지지하는 세대 투표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과정에서 드러난 복지 논쟁과 내곡동 대통령 사저 부지 논란 등을 겪으면서 유권자들 사이에 다시 고개를 내민 ‘정권 심판론’이 세대 투표를 부추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 후보의 압승을 가져온 건 직장인 넥타이 부대의 ‘퇴근 투표’ 행렬이었다. 방송3사 출구조사 집계 과정에서 나 후보는 낮 12시까지 3.4% 포인트 차로 이기고 있었고, 오후 5시 동률을 이뤘다가 오후 6시부터 박 후보가 2% 포인트 앞서기 시작했다. 직장인들이 퇴근한 오후 6~8시 투표에서 본격적으로 격차가 벌어진 것이다.
성별로는 남녀 모두 박 후보 득표율이 높았다. 남성 유권자는 55.7%가 박 후보를, 43.8%가 나 후보를 지지했다. 여성도 53.4% 대 46.3%로 박 후보 지지가 훨씬 많았으나 남성보다는 격차가 작았다.
◇흔들리는 강남 표심=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강남3구의 표심이 흔들린 점은 내년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6년에 실시된 5·31 지방선거의 경우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는 강남3구에서 65.8~74.4%를 얻었고, 민주당 강금실 후보는 18.2~24.3%를 얻었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는 오 후보가 51.2~ 59.9%를, 민주당 한명숙 후보는 34.2~43.0%를 얻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26일 오후 11시30분 개표 기준으로 나 후보가 51.1~61.1%, 박 후보가 38.3~48.6%를 얻었다. 양측의 격차가 갈수록 줄고 있는 셈이다. 박 후보는 나 의원의 지역구인 중구에서도 51.96%를 얻어 나 후보(47.65%)를 이겼다.
한나라당 소속 강남지역 한 의원은 “(박 후보를 찍은 것이 알려질까봐) 몇 번씩 투표용지를 접어서 넣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며 “강남이라고 무조건 한나라당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도 “박 후보가 강남에서 선전한 것은 상전벽해라 할 만한 엄청난 변화”라며 “선거 지형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박 후보가 강남에서 선전한 배경에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의 효과도 컸다는 분석이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강하고 안 원장을 지지하는 보수적 성향의 강남 유권자들이 박 후보에게 대거 표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태원준 엄기영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