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10·26 재보선] 民心 ‘기성정치’에 옐로카드…‘새정치’에 표 던졌다

입력 2011-10-27 01:07

불과 두 달 전 정치판에 얼굴을 내민 무소속 후보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여당 후보를 누르고 정치 전면에 우뚝 섰다.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으로 상징되는 ‘기성정치’ 대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 대변되는 ‘새 정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최초의 시민단체 출신 서울시장의 탄생은 기존 정당체제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기성 정당은 위기감에 휩싸였다. 민주당은 10·3 범야권 통합경선에서, 한나라당은 서울시장 본선에서 박 후보에게 제대로 힘 한번 못 쓰고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특히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선거 기간 “정당정치는 민주주의 실현에 중요한 뿌리”라고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판세를 바꾸지 못한 점은 정치권의 위기감을 더 크게 만들고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기성 정당들은 국민들의 변화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생존조차 힘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정치권 내부에서도 “기성 정당에 대한 염증이 ‘안철수 현상’이라는 신드롬을 일으키고 시민대표를 표방한 박 후보까지 당선시킨 메시지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나라당 한 초선 의원은 “20∼40대 젊은 유권자들은 자기 중심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이를 분출시키려는 욕구가 강하다”며 “이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방식으로 정치권에 호소했지만 기존 정치권은 이런 변화 요구를 읽지도 수용하지도 못했다”고 고백했다.

기성정당의 정치 행태 역시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기성정당들이 기존 행태를 답습한 게 유권자들의 분출 욕구를 폭발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한 만큼 선거운동을 포함한 정치 행태 역시 변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애초 ‘네거티브 선거 캠페인’을 하지 않겠다던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 측이 선거 운동 기간 내내 ‘검증’이라는 명분으로 박 후보 흔들기에만 매달린 것이 결과적으로 기성 정당에 대한 혐오만 키우는 역효과를 가져온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기성 정당의 위기는 대대적인 정계개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민주당은 기존 야당들 외에 시민사회 세력까지 합쳐진 야권 연합 방식이어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공식’이 이번 선거를 통해 증명된 이상 최대한 외연을 확대하는 방향의 통합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역시 총선을 앞두고 외부 인사 수혈을 통한 당내 변화뿐 아니라 자유선진당과 보수 시민세력에게 손을 내미는 연합 움직임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시민세력을 중심으로 한 제3 정당 출현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 본부장은 “환경, 복지 등 새로운 어젠다를 내세운 새로운 정치세력이 출현할 경우 기존 정당의 대안으로 여겨질 소지가 커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3 세력이 확실한 대안으로 자리잡는 게 쉽지만 않다는 시각도 있다. 현실 정치에 직접 뛰어든 박 후보가 기존 정치권과 차별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