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銀·대출중개사 ‘검은 공생’ 무직자 직업 꾸며 눈속임 대출
입력 2011-10-26 18:38
A저축은행에서 개인 신용대출을 관리하는 최모씨는 지난달 대출 연체자로 분류된 8명이 같은 직장에 다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최씨는 연체자들이 휴대전화를 받지 않자 직장으로 전화를 걸어 근무 여부를 확인했다. 모두 근무 중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수상하게 생각한 최씨는 “이○○씨 계신가요?” “박○○씨 근무하나요?”라며 아무 이름이나 대 봤다. 회사 측에서는 “소속은 맞는데 외근직이라 통화가 되지 않는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본보가 저축은행의 대출심사 실태를 보도한 이후(본보 10월 25일자 1면) 대출업무를 담당하는 실무자들은 “저축은행과 대출 중개업체가 공생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전해왔다. 특히 일부 대출 중개업체가 ‘직업 세탁’ 등 사기행각을 벌이고, 고객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일부 저축은행은 이를 의도적으로 허술하게 심사함으로써 일명 ‘작업대출’이 횡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B저축은행에서 대출금 회수 담당을 맡고 있는 박모씨는 26일 “대출 신청자의 신원을 꾸며 주는 작업대출이 일부 중개업체를 통해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대출금 연체자가 “나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토로했지만, 서류에 적혀 있는 직장으로 전화를 걸자 여전히 “생산직에 계시는 분이라 일과 후 연락을 드리겠다”고 답변한 사례도 있었다. 박씨는 “중개업체가 일부 회사와 미리 입을 맞춰 신원 확인을 대비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루 60∼70건 발생하는 연체 중 3∼4건은 이러한 작업대출 사례”라고 말했다.
연체가 발생한 뒤에야 비로소 대출 신청자의 부실이 드러나는 이유는 심사과정이 허술하기 때문이었다. C저축은행에서 대출심사 업무를 했다는 김모씨는 “저축은행임을 밝히지 않고 택배회사를 사칭하며 우회적으로 가족이나 직장을 확인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적 경쟁이 과열되면서 웬만하면 대출을 승인해주는 저축은행들의 일반적인 관행도 문제다. 김씨는 “사기로 의심된다고 보고했지만 ‘근무지가 확실해 문제가 없다’는 지시를 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저축은행업계에 따르면 중개업체를 통한 개인 신용대출의 비중은 60%를 웃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저축은행들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서 개인 신용대출로 수익원을 바꾸면서 영업을 위해 중개업체와의 관계를 끊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금감원에 따르면 저축은행들의 가계자금 대출채권 잔액은 6월 말 현재 8조9804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말 7조3653억원, 지난해 12월 말 8조5150억원에서 꾸준한 증가세다.
한 대형 저축은행 관계자는 “각 회사마다 신용평가시스템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저축은행 중앙 전산망 통합이 잘 안 되고 있다”며 “특히 대출 중개업체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은행에서는 작업대출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