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치유상담연구원 정태기 원장 ‘잃어버린 나’를 찾아 드립니다
입력 2011-10-26 17:48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를 짊어지고 세상을 살아간다. 그 상처가 삶의 걸림돌이 돼 또 다른 상처를 만든다. ‘상처 입은 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이다. 그러나 상처 입은 자의 상처가 다른 사람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상처가 될 수 있다면 그는 ‘상처 입은 치유자’이다.
정태기(72·크리스찬치유상담연구원) 원장은 ‘상처 입은 치유자’이다. 한국 내적치유사역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히는 그는 자신의 상처를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원천으로 사용하는 ‘영혼의 의사’로 불린다. 또 1984년부터 국내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임상목회세미나를 인도했고, 97년 크리스찬치유상담연구원을 설립해 ‘상아탑’에 머물러 있는 상담이론을 대중화시킨 ‘목회 실천가’이기도 하다.
그는 올해 두 개의 선물을 받았다. 16회 여성주간을 맞아 대통령 국민포장을 받았고, 모교 클레어몬트신학대학원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2013년 대학원대학교 개교 준비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를 최근 만나 상담사역이야기를 들었다.
상처입은 치유자
인생의 전환점은 35세에 찾아왔다. 그는 사람들 앞에 서면 말 한마디 못하고 떨기만 했다. 친구들은 그를 ‘꿔다놓은 보릿자루’ ‘재봉틀’이라고 불렀다. 지금 수천명 앞에서 열강하며 대중을 웃겼다 울리는 그의 모습을 보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의 유년기는 어둡고 긴 동굴 같았다. 아버지는 조강지처인 어머니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 어머니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를 잊기 위해 하루 종일 농사일만 했다. 아버지로부터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하고 성장한 그는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원망하며 살았다. 그의 인생 목표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는 것’이었다.
66년 한신대를 졸업한 후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산업선교사로 노동운동을 했다. 그러나 당시 유신정권 시절, 노동운동의 주모자로 쫓기다 73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시카고 노던신학대학원과 클레어몬트신학대학원에서 목회상담학을 공부하면서 웨인 오츠 교수를 만났다.
“35세까지 사람을 만나면 불안하고 두려웠어요. 그게 제 운명인 줄 알았죠. 그런데 웨인 오츠 교수의 상담을 받으면서 저에게 유아기 때 상처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어머니에게 어렴풋이 듣기는 했지만 그 사건이 내면의 상처로 남아 저의 전 생애를 지배하게 될 줄은 몰랐죠.”
그가 갓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부부싸움 후 아무것도 먹지 못해 자리에 자주 몸져누웠다. 그때마다 그는 동네 아주머니에게 맡겨졌고 어머니는 외갓집으로 갔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그는 어머니를 그렇게 만든 아버지가 밉고 두려웠다.
“아버지를 무서워하는 아이들은 세상을 두려워합니다. 이것이 자아상을 만듭니다. 어릴 때 부모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가 잠재의식에 남아 있다가 성인이 돼 대중 앞에 서면 자율신경을 떨게 만듭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것을 발휘해보지도 못하고 공황상태에 빠져 고생하게 됩니다. 제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설계도는 치밀하고 섬세했다. 하나님은 과거의 상처를 끌어안고 살았던 그를 치유하시고 그와 같은 아픔을 품고 사는 다른 이들을 치유하도록 이끄셨다. 그는 미국 켄터키주에 있는 영성수련원에서 5개월 동안 공동체생활을 했다. 어떤 실수를 해도 손가락질 받지 않고 사랑을 받는다는 확신을 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마음을 열고 세상을 받아들이게 됐다. 자신의 얘길 듣고 울어주던 사람들 덕분에 자신감을 회복했다. 또 밤새도록 찬양하고 명상기도를 하면서 내면의 상처는 치유됐다.
이후 그는 켄터키주 루이빌 주립정신병원 원목으로 3년 동안 사역한 후 83년 귀국했다. 한신대 교수로 안정된 생활을 하던 95년 말이었다. 누군가 전화를 했다. “이렇게만 계실 겁니까?” 하고 전화를 뚝 끊었다. 그는 오랫동안 전화기를 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도했다.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임상목회 세미나를 인도해오긴 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그것만으론 뭔가 부족했던 것 같았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너 혼자 편하게 살려고 내가 너를 치유해 주었니. 너와 같은 사람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은데….” 그는 가족치료를 통한 민족회복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97년 3월 크리스찬치유상담연구원을 개원했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 주는 곳
그가 연구원에서 1년에 8차례 인도하는 영성수련회에는 해외교포들도 많이 참석한다. 지난 15년 동안 영성수련회에 참가한 사람은 1만7800여명에 달한다. 참가 지원자가 매번 정원을 넘겨 대기자 명단이 늘고 있다. 무엇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것일까.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시절 치명적인 충격을 받은 사람은 성인이 된 후 두려움을 주는 상황이 벌어지면 충격을 받았던 그 시기에 정서가 멈추어버립니다. 그 순간 어린아이가 돼 불안과 공포를 느낍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좋은 환경 속에 있어도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다.”
김미영(41·가명) 집사는 영성수련회에 참석해 8살 때 ‘잃어버린 나’를 41살에 찾았다. 그는 25살에 결혼해 아들 둘을 낳고 살았지만 단 한번도 남편에게 따뜻한 마음을 주지 않았다. 남편이 조금이라도 마음 상하게 하면 “그만 살아요. 이혼하면 되잖아”란 말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언젠가 이혼하리라’ 다짐했다. 자신이 왜 그런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그가 8살 때 경험한 한 사건이 평생의 상처로 작용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가 8살 때 아버지가 폐결핵으로 돌아가셨다. 이후 어머니는 세 명의 딸을 두고 재가했다. 어머니가 떠나는 날 흙 마당을 뒹굴며 “엄마 가지 마”라고 애원하며 울었던 사건이 그의 정서에 머물러있었다. 그는 외모가 빼어나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지만 누구에게도 무의식적으로 정을 주지 않았다. 정을 주었던 어머니가 떠났듯 누군가에게 정을 주면 버림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영성수련회에서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을 가슴에 품은 사람들을 만나 함께 마음을 나누고, 목이 터져라 기도하고 찬양하며 회복됐다.
이외에도 심리적인 충격으로 7년 동안 앞을 보지 못했던 사람이 내적치유를 통해 시력을 회복한 이야기, 어린시절 성폭력의 상처로 죽음보다 힘든 시간을 보낸 여성들의 가정회복 이야기 등 수많은 회복이야기가 있다.
항아리 만들기 운동
그는 그동안의 임상경험을 통해 ‘가정은 마음의 그릇을 구워내는 가마’와 같은 곳임을 확인했다. 특히 그릇 중 가장 큰 항아리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목사가 되면 교회가 살아나고, 항아리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선생님이 되면 교육이 살아나며, 항아리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사업을 하면 경제의 체질이 바뀌고, 항아리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바뀌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국민운동으로 ‘항아리 만들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항아리 만들기 운동’은 자녀들 앞에서 기도하고 성경 읽으며 섬기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서약하고 실천하는 가정회복운동이다. 그는 부모가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서로 사랑하는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이 강하고, 목표를 향해 자신의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쏟아 붓는다고 했다. 또 집중력, 창의력, 자발성, 자존감이 높고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상처를 받지 않으며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고 했다. 그동안 연구원이 펼친 항아리 만들기 운동에 참여한 사람은 63만명에 이른다.
“미국의 한 유명한 정신과학자는 2∼7세 시기 건전한 부모 아래서 자란 아이들이 커서 적어도 7만5000명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했습니다. 인도의 간디도 7억∼8억 인도인의 마음을 사로잡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영국이 스스로 물러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나와야 합니다. 기도하는 부모, 성경 읽는 부모, 서로 섬기는 부모를 보고 자란 자녀는 큰 인물이 될 마음의 그릇을 갖게 됩니다.”
죽음의 공포와 맞먹는 부부싸움
마음의 그릇에 금이 가게 만드는 것은 부모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정에서 상처를 받는데 특히 부부싸움은 자녀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준다고 말했다.
“저희 연구원 조사에 의하면 500가정 중 부부싸움을 단 한번도 하지 않은 가정은 한 가정 정도였습니다. 부부싸움은 청소년시기보다 2∼7세에 더 치명적인 영향을 줍니다. 이 시기에 싸우는 부모를 본 아이들이 느끼는 공포수치는 군인이 전쟁에 나가 옆의 전우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공포수치와 같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면 아이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주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작
그는 2013년 동산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 개교를 앞두고 있다. 그는 이제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임상경험과 학술이론으로 새로운 실험교육을 시도할 것이다. 지식보다는 인생의 전환점을 찾아주는 교육을 할 것이다.
“어린시절 상처 받은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마음껏 놀아보지 못하고, 마음껏 이야기해보지 못하고 어른이 된 것입니다. 어른이 된 그들에게 놀이판을 벌여줄 것입니다. 또 마음껏 이야기 못해본 사람들에게 마음껏 이야기하고 춤추고 노래하게 할 것입니다. 그런 경험을 반복하면 자신 안에 벌벌 떨고 있던 ‘성인아이’가 그제야 안심하고 밖으로 나옵니다. 그제야 인생이 변합니다. 혼자서는 안 됩니다. 뜨거운 사람들과의 만남 경험에 의해서 일어납니다. 저희 학교가 그런 일을 할 것입니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주는 그는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 여긴다. “자기를 찾은 사람들은 너무나 행복해합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 역시 행복합니다. 어떤 재벌도 부럽지 않습니다. 전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부자입니다.”
글 이지현 기자·사진 곽경근 선임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