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집마다 ‘누런 가을’ 대롱대롱… 점묘화로 변한 경북 청도 감마을

입력 2011-10-26 17:36


빠른 속도로 남하하는 단풍을 쫓아가던 경부선 열차가 경북 경산에서 블랙홀처럼 캄캄한 터널 속으로 빨려든다. 암흑 속을 덜컹덜컹 달리던 무궁화호 열차가 남성현 터널을 벗어나는 순간 차창 밖으로 주홍색 세상이 환하게 펼쳐진다. 전국 최대의 씨 없는 감 생산지인 청도에 들어선 것이다.

경북의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청도는 운문산을 비롯해 크고 작은 산들에 둘러싸인 산악형 분지로 해마다 이맘때면 마을마다 한 폭의 주홍색 점묘화를 그린다. 영남대로의 청도옛길 시작점이자 끝점인 팔조령 고갯길은 물론 철도와 국도 주변이 온통 감나무 천지로 이곳에서는 가로수조차 가지마다 주홍색 감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전국 감 생산량의 15%를 차지하는 청도 감은 생긴 모양이 둥글납작해 반시(磐枾)로 불린다. 청도반시는 씨 없는 감으로 육질이 연하고 당도와 수분이 높아 홍시 중 최고로 꼽힌다. 460여년 전인 조선 명종 1년(1545년)에 이서면 신촌리 세월마을 출신인 박호 선생이 평해군수로 재임하다 귀향 시 그곳의 토종 감나무 접순을 무속에 꽂아 와서 청도 감나무에 접목하자 씨 없는 감이 열렸다고 한다.

청도반시는 곶감이나 단감이 아닌 달착지근한 홍시로 먹는다. 씨가 없어 곶감을 만들면 모양이 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곶감 대신 껍질을 깎은 감을 네 조각으로 쪼개 꼬들꼬들하게 말린 감말랭이다. 최근에는 껍질을 깎아 반만 말린 반건시, 얼린 아이스홍시, 감식초, 감화장품 등이 선을 보였다.

감나무 숲에 둥지를 튼 청도의 마을 중 송금마을만큼 운치 있는 곳도 드물다. 경부선 기차가 남성현 터널을 지나 청도에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송금마을은 150가구의 아담한 녹색농촌테마마을로 와인을 소재로 한 드라마 ‘떼루아’의 촬영지. 울안의 감나무가 담장 밖까지 가지를 드리운 골목길에 들어서면 나지막한 돌담길이 반갑고 감나무 가지에 올라 장대로 홍시를 따는 노인들의 모습이 정겹다.

감와인 저장고인 와인터널은 송금마을의 명물. 증기기관차가 다니던 1015m 길이의 와인터널은 1904년 완공된 경부선 남성현 터널로 1937년 아랫마을에 복선 터널이 생기면서 폐쇄됐다. 너비 4.5m, 높이 5.3m의 남성현 터널은 상층부가 아치형의 붉은 벽돌이라 더욱 운치 있다. 철길을 따라 와인터널 속으로 들어가면 시음장과 레스토랑, 와인 저장고 등의 시설이 마련돼 있다.

청도읍 신도리는 청도 최대의 감 생산지이자 새마을운동 발상지. 새마을기가 펄럭이는 마을의 기념관에는 새마을운동으로 거듭난 신도마을의 이야기와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저축은 국력’ 등이 전시돼 있다. 마을 앞 신거역에 전시된 열차는 박 대통령이 탑승했던 전용열차. 마을에서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감따기 체험행사도 진행한다.

풍각면 성곡리의 코미디철가방극장(02-703-1950)은 개그맨 전유성씨가 만든 코미디 전용극장. 밖이 보이는 40석 무대로 ‘코미디도 자장면처럼 배달된다’는 의미로 3층 높이의 철가방 모양으로 건축됐다. 20명 이상 단체일 경우 공연시간도 마음대로 예약할 수 있는 것이 특징.

화양읍의 청도한옥학교(054-373-8556)는 변숙현(52)씨가 2003년 설립한 전통한옥 양성학교. 3개월 과정의 대목수와 소목수 양성과정을 비롯해 주말반인 ‘스스로 집짓기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한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통나무를 자르고 다듬는 등 내집 만들기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한옥에서 ‘유익한 불편’을 감수하고 살아야 건강에 이롭다고 말하는 변씨는 한옥이 불편하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체험학습도 진행하고 있다.

청도는 소싸움의 고장으로도 이름이 높다. 화양읍에 위치한 1만1245석 규모의 돔형 소싸움경기장에서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소싸움 경기가 벌어진다. 두 마리의 싸움소가 직경 39m의 원형경기장에서 밀치기, 뿔걸이, 들치기, 머리치기, 뿔치기 등 다양한 기술을 선보인다. 입장료는 무료로 우권을 구입해 우승소를 맞히면 배당금이 지급된다.

소싸움경기장 맞은편에 위치한 용암온천(054-371-5500)은 지하 1008m의 암반에서 솟아나는 섭씨 43도의 게르마늄 유황온천수로, 데우거나 식히지 않아 천연 그대로의 수질을 자랑한다. 용암온천관광호텔의 용암웰빙스파는 사우나와 바데풀, 그리고 아쿠아테라피를 갖춘 온천테마랜드로 유명하다.

이밖에도 청도에는 조선시대 궁중내시로 정3품 벼슬에 올랐던 김일준의 고택인 임당리김씨고택, 소나무 숲길이 아름다운 운문사생태탐방로, 단풍이 아름다운 삼계리계곡 등 가을 나들이 명소가 즐비하다(청도군 문화관광과 054-370-2378).



청도=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