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조폭
입력 2011-10-26 18:06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의 고전 영화 ‘대부’의 평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현대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 영화가 개봉된 1972년, 그때까지 부동의 역대 흥행수입 1위를 지켜온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제치고 새롭게 1위에 등극한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만큼 ‘위대한 초대작(epic) 영화’라는 것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었을 게다.
물론 ‘대부’는 영화적으로 뛰어난 작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살인과 강탈, 폭행, 협박 등 불법 폭력행위를 밥 먹듯 하는 조직폭력배, 이른바 대부로 불리는 이탈리아계 마피아 두목의 두 가정사, 곧 범죄조직으로서의 패밀리와 자식들을 중심으로 한 진짜 패밀리 이야기를 자못 감동적으로 분식해놓은 데 지나지 않는다.
일례로 말런 브랜도가 열연한 대부는 갱 두목이 아니라 마치 영명한 봉건군주나 대기업 회장 같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주위 사람들을 척척 도와주는가 하면 현명한 판단으로 ‘사업’을 이끌어나간다. 게다가 마약사업만은 안 한다고 버티다가 다른 조폭들로부터 암살위기를 맞기도 한다. 어차피 조폭임에도 나름대로 정의로운 이미지를 풍긴다.
이 같은 ‘조폭 미화’는 미국, 특히 대중문화계의 전통처럼 보인다. 역사가 짧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역사적인 인물을 갈구하다 보니 조폭 같은 무법자들도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고나 할까. 마치 의적처럼 미화된 서부개척시대의 열차강도 제시 제임스 형제나 은행강도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 패거리에서부터 20세기 초의 알 카포네, 벅시 시겔, 보니와 클라이드, 머신건(기관총) 켈리, 존 딜린저 등 영화로 만들어져 대중영웅처럼 부각된 조폭들은 모두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이런 할리우드의 영향을 받아선지 우리 영화에서도 조폭을 멋있고 ‘폼나게’, 또는 귀엽게(?)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갈수록 조폭이 늘어나고 더 기승을 부리는 데는 혹시 그 같은 요인도 작용한 게 아닐까?
조폭들이 길거리에서 유혈 난투극을 벌이는데도 겁을 먹고 움츠러든 경찰의 치욕을 씻겠다며 조현오 경찰청장이 ‘조폭 인권 무시, 총기 사용 불사’를 선언했다. 그러나 “총을 쏴서 조폭이 잡히면 왜 진작에 제압하지 못했겠느냐”는 게 현장의 불만어린 목소리란다. 조폭을 뿌리 뽑으려면 경찰의 심기일전을 포함한 강력한 대책도 절실하지만 은연중에라도 청소년들이 조폭을 동경하게 만드는 사회 분위기부터 바로잡는 게 필요할 듯싶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