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찬희] 골병

입력 2011-10-26 18:03


뼛속 깊이 든 병을 골병(骨病)이라고 한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보면 형주군을 이끌고 번성을 공격하던 관우가 방덕과 싸우는 중에 ‘초오’(草烏·투구꽃을 지칭하는 동시에 투구꽃 뿌리에서 나는 독을 말하기도 함)라는 독이 묻은 화살을 맞는다. 화타는 ‘괄골요독(刮骨療毒)’으로 관우를 치료한다. 칼로 살을 찢고 뼈에 묻어 있는 독을 긁어내는 수술요법이다. 정사 삼국지에는 다소 다른 기록이 나온다. 패국 초현 사람인 화타는 208년 조조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관우가 번성을 공격한 때는 219년이니 관우를 치료한 의사는 화타가 아닌 셈이다. 다만 괄골요독은 동일하게 묘사돼 있다.

얼마 전 만난 전직 고위관료는 자리에 앉자마자 길게 한숨부터 내쉬었다. 우리 경제가 골병이 들고 있는데 정부는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 경제가 앓고 있는 병의 증상은 다양하다. 수출에만 의존하는 불균형,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 고령화와 저출산에 따른 생산인구 감소세, 해결 기미조차 없는 청년실업, 엄청난 무게의 가계부채 등이 얽히고설켜 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 실타래 같다.

정부는 오래전부터 일자리 늘리기 혹은 고용 확충에서 해법을 찾고 있다. 경제가 활기를 띠려면 각 개인이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 노동을 하기 위해서는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개인이 열심히 일할수록 더 많은 돈을 벌고, 그 돈을 쓰면서 내수가 살아난다. 돈을 저축하거나 빚을 갚으면 가계부채 문제도 풀 수 있다. 꾸준하게 노동력이 투입되면서 수출이 살아나고, 경제 저성장이라는 그림자도 떨쳐버릴 수 있다. 가파르게 증가하는 복지 수요도 ‘일하는 개인’이 늘면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일-성장-복지’의 선순환 구조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10조1000억원에 이르는 예산을 일자리 사업 몫으로 잡았다. 청년, 노인 등 고용 취약계층에 전체 일자리 예산 가운데 대부분(9조5000억원)을 배정했다. 하지만 번지수가 틀린 듯하다. 일이 성장과 복지로 연결되려면 꾸준하게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자리가 많아야 하는데 우리 산업구조는 이미 고용 없는 성장으로 치닫고 있다. 아무리 수출이 늘어도 일자리는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어디에서부터 괄골요독을 해야 할까. 답은 근로시간에 있다. 우리 근로시간은 연간 2000시간 이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1위다. 반면 생산성은 상위 17개국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는데 아직도 장시간 노동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구식을 답습하는 셈이다.

이제는 잘 노는 것이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프랑스나 독일은 주 35시간 근로, 연간 6∼8주 유급휴가를 실시한다. 적게 일하지만 많은 부를 창출한다. 근로시간이 줄면 관광·여가활동 등으로 내수가 살아난다. 근로시간 단축이 경제 성장이라는 실질적 효과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은 합의에 이르기 쉽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임금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는 노(勞), 생산성 급감을 걱정하는 사(社), 사회적 혼란과 반발을 두려워하는 정(政) 때문이다.

그러나 병이 더 깊어지기 전에 뿌리째 들어내야 한다. 완전히 도려내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환을 남기게 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개원 40주년을 기념해 24일부터 이틀간 연 국제세미나에서는 “한국이 그동안 모방과 응용으로 성장을 했다면 이제는 경제·사회 분야에서 독자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관우의 목숨을 구했던 이름 없는 의사가 선택한 것처럼 우리도 과감하게 괄골요독할 때가 왔다.

김찬희 경제부 차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