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원순 시장, 선동 말고 분열 감싸안아야
입력 2011-10-27 01:41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새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것은 시민정치의 부활을 의미한다. 진보적 시민사회세력을 기반으로 한 박 후보가 한나라당이라는 거대 여당의 나경원 후보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패한 민주당에 이어 한나라당도 시민사회세력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수도 서울의 민심이 확인된 만큼 내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에도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서울시장은 1000만 서울시민을 아울러야 하는 막중한 자리다. 임기 내 복지예산 30% 확대 등 박 후보의 여러 공약들을 볼 때 소외됐던 이들의 삶의 질이 나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점은 긍정적이다. 반면 우려되는 점도 있다. 박 후보가 자신을 지지한 계층에 편중된 행정을 펼 가능성이 그것이다. 서울시의회마저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어 반대 목소리는 아예 무시하는 독선에 빠질 소지도 없지 않다. 이념과 정파를 뛰어넘어 서울시민 전체를 봐야 한다.
그러려면 중앙정치에 함몰돼서는 안 된다. 박 후보는 선거 과정에서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정부와 의회권력을 바꾸자”고 했다. 이번 승리의 여세를 다음 총선과 대선에까지 밀어붙이겠다는 시민사회세력의 속내가 그대로 담겨있는 말이다. 하지만 ‘서울시장 박원순’이 내년 양대 선거에서 반(反)한나라당 대열의 선봉에 서는 것은 곤란하다. 가뜩이나 이번 선거를 통해 진보와 보수, 좌우 대결이 심화됐고, 세대 간· 지역 간 분열상도 노정됐다. 이런 상태에서 서울시장이 특정세력을 지지하고 나선다면 서울은 극한 갈등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될 것이 자명하다. 다양한 갈등들을 용해시켜야 할 서울시 수장이 서울을 양분시키는 역할을 해서야 되겠는가. 박 후보 득표율은 50%를 넘었으나 반대표를 던진 시민들을 염두에 두고 낮은 자세로 공정한 행정을 펴는 데 주력하길 기대한다.
시민사회세력에게 일격을 당한 정치권에는 엄청난 후폭풍이 몰아칠 전망이다. 사회변화와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후과를 톡톡히 치를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가 당선된 것도 따지고 보면 정치권의 구태가 가장 큰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민주당의 경우 야권 통합의 주도권을 시민사회세력에게 내주는 것은 물론 서울시장 선거에 이어 내년 대선에서도 후보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손학규 대표가 박 후보를 열심히 응원했지만, 선거 막바지에 박 후보 지지를 선언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비하면 파괴력이나 영향력이 미미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민주당이 누려온 야권 대표성을 내줘야 할지도 모른다. 한나라당의 경우 지도부 교체는 물론 당 운영 방식 등 전면적인 수술을 감내해야 할 것 같다. 기존 정치권이 제 역할을 못했다는 민심을 들여다보면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룬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대세론도 다시 위협받게 됐다. 여야의 환골탈태가 불가피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