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교회-충북 제천 새생명전원교회] 널따란 교회 앞마당… 가을이 내려앉다

입력 2011-10-26 18:00


충북 제천시 송학면 오미리는 산촌마을이다. 해발 500여m인 이곳은 감악산과 용두산 줄기가 포개지면서 수려한 경치를 연출한다. 워낙 청정지역이라 계곡마다 가재가 득실거린다. 이곳에 예쁜 모습으로 자리한 새생명전원교회는 이름처럼 전형적인 전원교회다. 절절한 간증을 가진 목회자와 50여 교인들이 교회 이름만큼이나 아름답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외형은 비록 작으나 세계를 향해 주님의 선교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큰 꿈을 품은 교회이기도 하다.

오미리는 원래 오미자가 많이 생산돼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하지만 다른 의견을 대는 이도 있다. 마을의 다섯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제 각각의 맛을 낸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것이다. 어쨌든 예쁘고 아름다운 마을임에는 틀림이 없다.

서울에서 갈 때는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일단 만종IC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탄다. 중앙고속도로 신림IC로 들어가 왼쪽 주천 방향으로 20㎞ 정도 가다 신림면 황둔리 찐빵마을 직전 작은 다리를 지나자마자 우회전한다. 로뎀청소년학교를 지나 조금만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작은 다리와 함께 교회 이름이 쓰인 팻말이 붙어 있다.

산속 깊숙한 곳에, 민가가 거의 없는 곳에 자리 잡은 교회가 처음엔 다소 어색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교회 주위를 둘러보면 그 이유가 짐작된다. 교회 이름에 나타나 있듯이 새로운 생명의 힘을 얻기에 맞춤하기 위한 전원(田園) 속의 교회다. 예부터 소바위 마을이라고 불린다기에 여기저기 둘러보지만 그 연유를 찾을 길이 없다.

노랗게 물든 잔디 위에, 숲을 등지고 서 있는 교회 모습은 사진에서 본 스위스 어딘가를 연상시킨다. 마을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하려는 듯 바로 밑에는 오미자 밭이 쭉 펼쳐져 있다. 교회 옆에는 잡초를 잔뜩 뒤집어 쓴 계곡이 보인다. 잡초 더미 속에 군데군데 군락을 이룬 가을꽃들이 저마다 예쁜 모습을 뽐낸다. 잡초를 헤치고 내려가면 졸졸 흐르는 계곡물이 더없이 맑다. 차가운 계곡물을 한 움큼 얼굴에 갖다대면 정신이 번쩍 든다.

반갑게 맞아주는 손태흥(53) 목사와 인사를 나눈 뒤 교회에 딸린 테라스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면 말 그대로 자연인이 된 듯하다. 김인실(52) 사모가 내온 오미자차 한 잔을 입에 대자 시큼하면서도 달짝지근하면서 쌉싸래한 맛이 입안 가득 번진다. 피로가 풀리면서 머릿속까지 맑아진다.

전원에서 피어난 하나님의 뜻

새생명전원교회에서는 주일마다 50여 성도가 모여 예배를 드린다. 제천은 물론 강원도 원주, 영월 등지에서 오는 성도들도 꽤 있다. 2002년 7월 손 목사 가족 3명이 예배를 드리면서 문을 연 이래 괄목할 성장을 이뤘다.

이 땅의 교회 치고 나름대로 사연을 갖고 있지 않은 곳이 있으랴만, 새생명전원교회는 짜릿한 이야깃거리들을 품고 있다. 이는 손 목사의 개인적인 간증과도 연결된다.

17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지낸 뒤 시작한 사업의 실패, 신학 공부와 교회 개척, 광야와 같은 목회 이야기 등이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방불케 한다.

교회 개척은 2000년 손 목사의 특별한 체험으로 발단됐다. 사업 실패로 지치고 메말라진 그의 내면에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이다. 그야말로 불같이 임한 그분은 또렷한 음성을 들려주셨다. “이곳에 교회를 지어라!” 가족과 생이별해 농사와 막일로 살아가던 그로선 황당한 일이었다. 하지만 위엄에 찬 그분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다. 아들을 주님의 종으로 만들겠다고 서원하며 기도하시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올랐다. 앞뒤 재지 않고 이듬해 대전신학교에 편입학한 뒤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서둘러 교회를 열었다.

하지만 목회의 길이 어디 만만한가. 고난과 연단의 길이었다. 화전민 7가구가 사는 산골 원두막으로 된 교회에 사람이 찾을 리 없었다. 경북 구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사모와 딸을 데려와 예배를 드렸다. 서울장신대학교 신대원에 진학했지만 학비를 댈 수 없어 형제와 친척들에게 손을 벌렸다. 간신히 내던 전기와 전화요금도 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기를 1년여, 목회를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한 부부가 교회를 찾아와 함께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계속하라는 하나님의 신호였다.

힘을 얻은 손 목사는 내친 김에 새로 교회당 건축까지 했다. 지금의 교회당이다. 2004년 2가정, 2005년 4가정, 2006년 8가정, 2007년 17가정, 2008년 32가정으로 교인들이 늘어났다. 소바위 마을에서 살다가 인근 봉양읍으로 이사한 한 교인이 버스로 교회에 출석하면서 버스기사를 전도하자 그 기사가 승객들을 전도했다. 30년 넘게 이단 종교에 빠져 있던 사람이 전도돼 예수를 영접했다. 영월에서 1시간30분간 트럭을 몰고 출석하는 교인도 생겼다. 손 목사는 2007년 교회 개척과 초창기 목회 과정을 ‘전원에서 피어나는 이야기’(베드로서원)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전원에서 피어난 하나님의 능력

새생명전원교회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교회는 지난 3월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두 개의 교회를 개척했다. 우연히 알게 된 탄자니아의 피폐한 영적 상황에 안타까움을 품고 기도하던 교인들이 힘을 모은 것이다. 작은 산골 교회의 이런 기적 같은 일에 대해 하나님의 능력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교인 20여명이 지난 8월 5박6일간 몽골 선교 상황을 답사하고 돌아왔다. 세계선교에 자신감을 얻은 손 목사는 주위의 목회자와 성도들을 규합해 ‘세계선교사역자모임’을 발족하기까지 했다.

손 목사는 이에 대해 “한국교회는 엘리압을 상대할 것이 아니라 골리앗과 대적해 싸워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큰 의미 없는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진정한 적에 집중해 싸워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는 말씀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새생명전원교회의 국내 미자립교회에 대한 지원도 대단하다. 개척 초기 미자립의 설움을 처절히 겪은 손 목사는 시간 나는 대로 전국의 미자립교회를 돌며 자비량 집회와 강연회를 열고 있다. 그때마다 항상 10여명의 교인들이 동행해 힘을 보탠다. 지난해 12개 교회에서 열었고, 올해도 지금까지 10개 교회를 다녔다.

그래서인지 교회에서 느껴지는 영적인 분위기가 심상찮다. 방문객의 심정을 눈치 챘는지 손 목사가 얼른 “저와 우리 교인들은 항상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성령의 인도를 구하면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말한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교회당 주변을 다시금 빙 돌자 좀 전에 보이지 않던 게 눈에 든다. 황토로 지어진 사택 건물이다. 연륜이 묻어나는 허름한 건물의 방문 밑에 붙어 있는 아궁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어릴 적 고향집이 떠오르면서 향수를 자극한다.

작별 인사를 하면서 손 목사가 작은 봉지 하나를 내민다. 전날 산에서 캐온 더덕 몇 뿌리를 담았단다. 열어놓은 차창으로 들어오는 산골의 가을바람이 싱그럽고도 달다. 길가에 핀 하얀 들꽃이 바람에 살랑거리며 잘 가라고 인사를 한다. 이해인 수녀의 시 ‘가을바람 편지’가 떠오른다.

“…나는 모든 꽃을 흔드는 바람이에요/ 당신도 꽃처럼/ 아름답게 흔들려 보세요//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답니다!// 그러고 보니 믿음과 사랑의 길에서/ 나는 흔들리는 것을/ 많이 두려워하면서 살아온 것 같네요// 종종 흔들리기는 하되/ 쉽게 쓰러지지만 않으면 되는데 말이지요// 아름다운 것들에 깊이/ 감동할 줄 알고// 일상의 작은 것들에도/ 깊이 감사할 줄 알고// 아픈 사람 슬픈 사람 헤매는 사람들을 위해/ 많이 울 줄도 알고// 그렇게 순하게 아름답게 흔들리면서/ 이 가을을 보내고 싶습니다…”

제천=글 정수익 선임기자 사진 강민석 선임 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