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환의 삶과 신앙] 까치밥

입력 2011-10-26 18:00


감이 익는 계절이 왔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하늘을 배경으로 붉게 타오르듯 익어가는 감 열매를 보면 마치 시간여행을 하듯 아련한 추억들이 되살아난다.

어린시절 내가 자라던 외가 동네에는 집집마다 감나무 몇 그루씩이 있었다. 간식이 귀한 시절 감은 농가 부수입과 겨울철 간식에 요긴하게 활용되었고, 집집마다 감나무는 귀중한 재산목록이었다. 해마다 이맘때쯤 되면 감 수확하느라 집집마다 웃음꽃이 피고 우리 꼬맹이들도 일손을 거들며 달콤하게 익은 홍시를 마음껏 맛볼 수 있는 행복한 시절이었다.

외할머니를 따라 감 수확을 도우면서도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매번 감을 수확할 때마다 꼭대기 근처의 감 얼마만큼은 남겨놓는 것이었다. 저 몇 톨의 감이 한겨울에는 얼마나 귀하고 요긴한 간식거리인데… 늘 아쉬운 마음에서 한번은 외할머니께 그 이유를 여쭈어 보았다.

“까치도 겨울을 나야지. 저것들은 까치밥이란다.” 그러고 보니 동네 수확을 끝낸 모든 감나무마다 까치밥이 주렁주렁 달려있던 기억이 난다. 그 어렵던 시절에도 말이다.

몇 년 전 서울에서 밀레의 작품전이 열릴 때이다. 밀레의 작품 가운데 ‘자비심’이란 그림 앞에서 문득 까맣게 잊고 살던 ‘까치밥’이 생각났다. 그 그림에는 어느 초라한 늙은 걸인이 간절하고 창백한 손길로 빵을 구걸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옆 화면에는 조금 문이 열려있는 소박한 가정의 부엌을 배경으로 한 엄마가 어린 딸에게 한 덩어리의 빵을 건네고, 빵을 받은 어린 소녀의 발걸음이 마치 춤추듯 늙은 걸인에게로 향하는 장면이 담겨있다.

궁핍한 나그네를 도와주면서도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려 하지 않는 소녀 어머니의 깊은 마음씨가 밀레의 부드러운 붓 터치에서 묻어 나오는 듯했다.

나는 그 그림 앞에서 한동안 말을 잃고 서있었던 기억이 있다. 까치밥을 나누어 주던 내 외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밀레의 부드러운 색감과 정교한 표정묘사들을 통해 내 가슴속 깊은 슬픔의 창고를 건드렸기 때문이리라.

구약을 읽으며 늘 궁금했던 것은 감사를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왜 모세는 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왜 모세는 그들 곁을 떠나지 않았을까? 아니 왜 떠나지 못했을까? 출애굽 과정의 엄청난 기적들을 까맣게 망각하고 기회만 나면 원망과 불평만을 일삼던 이스라엘 백성들. 투덜이들이라 부르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는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던 노예근성속의 당시 하비루들. 모세가 그토록 많은 원망과 억울한 비난 속에서도 그의 백성을 버리지 않고, 아니 자신의 책임을 버리지 않고 출애굽의 과정을 마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가슴에 품고 있던 하늘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애굽의 나일강에서 구출을 받고 기적처럼 삶을 살아왔던 모세에게, 자기 라이프 스토리의 핵심은 자비심이었을 것이다. 그가 썼다고 알려진 모세오경의 핵심부터가 하늘의 자비심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모세오경의 저자 모세의 삶은 살아온 과정부터가 하늘의 자비심을 바탕으로 시작되는 한편의 드라마이다. 그러길래 모세는 초기 노예단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탈출 후 훈련의 과정에 지도자로서 인내를 가질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하늘의 자비심을 체험하는 자만이 보일 수 있는 위대한 인내심의 지도력을 보이며 마침내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며 그들을 약속의 백성, 히브리 백성으로 만들어 갈 수 있었던 것이리라.

이제 모든 것들이 각기 자신이 살아온 대로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며 살아있음을 뽐내는 아름다운 계절이 왔다. 이 계절에 우리가 하늘이 주신 ‘까치밥’ 덕분에 살아왔음을, 그리고 우리도 이 땅을 살면서 그 까치밥을 남기며 살고 있는지를 나 자신에게 진지하게 한번 물어보는 계절이 되었으면 한다.

■ 정석환 교수는 이야기심리학을 통해 보는 성인 발달과 목회상담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현재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장 겸 연합신학대학원장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