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도병 눈으로 본 전장의 참혹함 생생하게 담아내… 월간 ‘문학사상’, 김동리 작품 공개

입력 2011-10-25 18:04


월간 ‘문학사상’은 소설가 김동리(1913∼1995·사진)가 한국전쟁기에 쓴 소설 4편을 올 11월호에 공개했다. 이들 작품은 ‘P一等兵(일등병)’ ‘스딸린의 老衰(노쇠)’ ‘우물과 감나무와 고양이가 있는 집’ ‘亂中記(난중기)’다.

잡지에 ‘발굴 해제’를 쓴 김병길 숙명여대 교수는 “앞의 두 작품은 근자에 새롭게 발굴된 것이며, 뒤에 두 작품은 최초 판본으로 추정되는 텍스트”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물과 감나무와 고양이가 있는 집’을 제외한 세 작품은 이미 연구자들에 의해 발굴 사실이 학계에 보고된 바 있지만 일반 독자 대중들은 작품의 실체를 접할 수 없었다”며 “‘우물과 감나무와 고양이가 있는 집’과 ‘난중기’는 개작 및 개제된 판본이 그간 유통됐기에 (이번에) 잘못 알려진 서지 사항을 바로잡는다”고 덧붙였다.

해방공간에서 우익문단의 대표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인 김동리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어떠한 문학적 대응을 펼쳤는지 그 자체로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P일등병’은 1951년 4월 초판이 발행된 ‘문단육십인집 승리를 향하여 제1집’에 수록된 작품이다. 전투에서 부상당한 학도병 ‘P일등병’이 전장의 참혹함을 증언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는 지금 왼쪽 팔을 붕대로 매어 목에 걸고 있다. 귀도 하나 고막이 상(傷)해서 못 듣는다. 이(二)주간 싸운 것이 제일 많이 싸운 거라고 내가 의아해서 물으니까 그런 침통(沈痛)한 얼굴로 이(二)주간 채 못 되어 거의 전부(全部)가 부상(負傷) 혹(或)은 전몰(戰沒)되고 만 것이라고 한다. 중부전선(中部戰線)에서도 안동(安東) 부근(附近)에서 영천(永川) 방면(方面)으로 밀릴 때의 그 고전(苦戰)이란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한다. 주검이 무섭지 않다는 말은 정말 일선(一線)에 나가봐야 안다고 주검보다 더 무섭고 더 괴롭고 더 싫은 것이 일선(一線)에서는 정말 얼마든 있다고 P군(君)은 말한다.”(‘P일등병’에서)

‘스딸린의 노쇠’는 1951년 6월 7일부터 18일까지 ‘영남일보’에 연재된 소설이다. 소련이 한국전쟁에 개입하게 된 내막과 관련한 스탈린의 내면을 다뤘다. 스탈린은 3차대전을 일으킬 각본을 가지고 장비가 열악한 중국을 한국전쟁에 끌어들이나, 항공모함과 원자탄을 지닌 영국 해군력과 미국 공군력의 막강함에 위기감을 느낀다.

김동리는 “지금 스딸린은 커피 한 잔을 거진 다 마시어간다. 여기서 우리는 제○○호 특수 데레비존으로 그의 대뇌 속을 비치어보기로 한다”라는 서술로써 스탈린의 내면 풍경에 접근하기 위한 상상적 형상화를 시도한다. 이어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의 서술을 일시 교차시키는가 싶다가 이내 연재 3회부터 8회까지 스탈린의 내면독백만으로 작품을 완결 짓는다.

‘문학사상’은 또 1952년 6월 ‘공군순보’ 17∼18호에 실린 ‘우물과 감나무와 고양이가 있는 집’, 1952년 12월 ‘체신문화’에 게재된 ‘난중기’도 발표 지면에 근거한 서지 부분 등을 바로 잡아 새로 소개했다. 김병길 교수는 김동리의 한국전쟁기 소설에 대해 “대체로 설화적 시공간을 향해 열려 있는 그의 일반적인 소설 무대를 생각한다면 예외적인 경우”라며 “전쟁의 승리를 독려하는 이데올로기 서사가 아닌 일상적 현실에 밀착해 있는 사실주의적 재현의 결과물”이라고 평가했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