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조폭과의 전쟁 선포] 전국 220개파 5451명 ‘겁먹은 단속’에 버젓이 활개
입력 2011-10-25 18:34
조직폭력배들은 지능화된 수법으로 합법적인 사업을 가장해 세력을 키워가고 있다.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능력 있는 변호사를 선임해 법망을 피해가기도 한다. 진화하는 조폭은 법의 사각지대에서 활개치고 있지만 검찰과 경찰의 수사력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경찰이 주기적으로 첩보를 수집하고 동향을 파악하는 국내 조직폭력배는 220개 조직 5451명이라고 경찰청은 25일 설명했다. 2007년 222개 조직 5269명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단속실적은 매년 줄고 있다. 2008년 5411명을 검거해 1468명을 구속했지만 지난해에는 3881명을 검거해 884명을 구속하는 데 그쳤다. 올해 들어 9월까지 2706명을 검거해 571명을 구속했다. 현재 추세라면 지난해보다 실적이 저조하다. 신흥조직의 경우 2008년에는 2966명을 검거했지만 지난해 2017명으로 줄었고, 올해는 9월까지 1442명에 그쳤다.
단속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조폭이 지능화되고 점조직으로 진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전북 김제에서는 기업사냥꾼과 결탁한 조직폭력배 ‘김제읍내파’가 검거됐다. 두목 이모(44)씨는 2007년 3월 기업사냥꾼 김모(44)씨와 코스닥상장사를 인수한 뒤 회삿돈 70여억원을 빼돌렸다. 돈이 급한 회사에 사채를 빌려준 뒤 사주를 협박해 회사를 인수하고, 회삿돈을 빼돌리거나 주가를 조작해 거액을 챙기는 ‘고전적’ 수법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조폭은 건설업, 사채업, 유통업, 동남아시아 부동산투자, 주식시장 등으로 활동분야를 넓히고 있다”면서 “경기침체로 유흥업소 매출이 감소하면서 보험범죄, 불법게임장, 인터넷 도박에 손을 대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가짜 예술품을 만들어 유통시키거나 강매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금원을 확보하고 있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문어발식 확장도 마다하지 않는다.
일정한 계보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돈이나 사업 프로젝트에 따라 점조직 형태로 이합집산하는 것도 새로운 추세다. 서울 수서경찰서 강력반 소속 형사는 “큰 조직은 일본 야쿠자처럼 기업형으로 발전했다”면서 “소규모 조직도 적발되면 꼬리 자르기를 해 일망타진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수법도 교묘해졌다. 직접 폭력을 행사하는 대신 암묵적인 협박 등으로 검·경을 피해간다. 증인을 협박해 증언을 번복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큰 돈을 들여 변호사를 선임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전국 최대 폭력조직 칠성파의 두목 이강환(68)씨가 지난해 경찰에 붙잡혔다가 풀려난 일이다. 이씨는 조폭 수사로 유명한 검사 출신 등 변호사 5명을 선임해 대응했다.
수도권에 비해 지방에서 조폭 관리가 상대적으로 허술한 것도 문제다. 지역별 조폭은 경기도(898명), 서울(498명), 전북(484명), 부산(397명), 경북(394), 경남(349) 순이다. 그러나 지방은 치안인력이 부족해 단속은 쉽지 않다.
인천 조직폭력배 척결을 위한 수사본부(본부장 정해룡)는 현장에서 칼을 휘두른 혐의(살인미수)로 김모(34)씨를 구속하고, 공범 권모(33)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현장에서 위력을 과시한 이모(24)씨와 허모(22)씨 등 27명을 추가로 검거했다. 경찰은 당시 현장상황, 조직규모, 연락망 등을 파악하면서 추가 가담자의 인적사항과 조력자 등을 찾고 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