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출, 美·EU 침체로 최고 4% 감소 中 경기마저 하강땐 ‘휘청’
입력 2011-10-26 00:35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 시작한 글로벌 재정위기가 우리 경제의 성장엔진인 수출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과 EU가 경기침체에 빠지면 우리 수출은 최고 4% 감소하는 등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반도체, 컴퓨터, 디스플레이 등 정보기술(IT) 업종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열쇠는 중국이 쥐고 있다. 중국이 버티지 못하고 경기 하강으로 돌아서면 우리 경제는 대(對)중 수출 감소라는 태풍까지 함께 맞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경기부진 장기화에 대비한 거시정책, 산업별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대차대조표 불황=25일 산업연구원(KIET)이 낸 ‘선진권 경기불안이 국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세계경제는 1937년 미국 대공황, 96년 일본 버블 붕괴 직후 경기 회복과정에서 경기 재침체를 경험했던 때와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최근 경기침체는 ‘밸런스 시트 리세션(Balance Sheet Recession·대차대조표 불황)’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자산 거품이 붕괴되면서 자산은 사라지고 부채만 남자 그동안 벌어들인 돈을 빚 갚는 데 쓰면서 투자·소비가 실종되는 것이다.
경기침체와 비슷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우리 수출도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EU 수출증가율은 올 들어 지난달까지 전년 동기 대비 11.4%에 그쳤다. 대미 수출증가율은 지난 6월 11.3%에서 7월 2.4%로 추락했다. 이후 8월 6.8%, 9월 15.6%를 기록하면서 회복되고 있지만 올 들어 지난달까지 증가율이 14.8%로 지난해 연간 증가율(32.3%)에 턱없이 부족하다.
산업연구원은 세계 경제성장률이 1% 감소하면 우리 수출이 3% 줄어든다고 추산했다. 미국과 EU 성장률이 각각 1% 감소할 경우 대미 수출은 1%, 대EU 수출은 4%나 내려앉는다. 신현수 KIET 연구위원은 “미국은 우리 수출에서 10%, EU는 12% 정도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미국과 EU의 경기 부진으로 우리 수출이 2009년처럼 급감할 가능성은 낮다”며 “다만 우리 수출에서 비중이 70%에 이르는 신흥국으로 위기가 얼마나 파급되느냐, 특히 중국이 어느 정도 경제 성장세를 유지하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세계경제 침체가 중국 수출 감소로 이어질 경우 우리 경제에 불어 닥칠 후폭풍은 상당하다. 중국의 수출이 1% 하락하면 우리의 대중 수출은 0.2% 감소한다. 여기에 대미·대EU 수출이 줄어드는 것까지 포함하면 단순 계산으로도 수출 감소 폭이 6%를 넘는다.
◇IT산업 타격 클 듯=미국과 EU가 경기 재침체에 빠질 경우 반도체, 컴퓨터, 디스플레이 등 IT 산업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IT 업종은 미국이나 EU로의 직접 수출 규모는 크지 않은 대신 중국 등을 거쳐 완제품으로 조립돼 팔려나가는 간접 수출이 많다.
반면 자동차는 경기 민감도가 높지만 신흥시장에서 계속 수요가 늘고 있는 데다 국내 완성차업체가 중소형차 특화전략을 쓰고 있어 상대적으로 낮은 충격만 받을 것으로 예측됐다. 철강, 석유화학은 중국 수출이 대부분이라 영향권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하지만 세계경제 침체가 장기화되면 교역 조건은 갈수록 나빠질 수밖에 없다. 각국이 공공연히 보호무역주의를 내걸면서 무역분쟁이 잦아지고, 산업별로 예측하지 못한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중국과의 무역의존도가 심화되면서 우리 경제가 위기관리에 취약해질 가능성도 크다. 중국이 우리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20%를 웃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