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서민정] 우연히 만난 예술

입력 2011-10-25 17:46


어느 날 도서관을 갔는데 우연히 책 속에서 사진 작품이 담긴 엽서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 엽서에 짧은 글을 남겨두었는데, 얼마 후 어느 갤러리에 바로 그 엽서가 전시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내 가족사진을 보게 된 어느 음악가가 영감을 받아 아름다운 곡을 만들게 되었다면? 그리고 그 곡이 연주되는 음악회에 자신이 초대되었다면?

지난 한 주 동안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 서울의 동작어린이도서관에는 동물을 다룬 동화책 속에 동물 작품사진이 들어 있었고, 성남의 한 도서관에는 도시개발로 하루가 다르게 풍경이 달라진 성남을 기록해온 사진 100장이 숨어 있었다.

국회도서관의 학위논문 속에도, 국회 의원열람실의 ‘정치 캠페인 솔루션’ ‘국회보좌진 업무 매뉴얼’과 같은 책 속에도 사진작가가 열람자에게 보내는 엽서가 들어 있었다. 젊은 현대음악 작곡가들은 일반인의 사연이 담긴 사진을 보고 떠오른 영감을 곡으로 만들어 연주회를 열었다.

이 모든 일은 지난 한 주 동안 열린 ‘아트 해프닝, 운수 좋은 날’이라는 행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 참신한 행사를 기획한 지인의 초청으로 나는 연주회와 사진 작품이 숨겨져 있는 두어 군데 도서관을 다녀왔다.

도서관의 손때 묻은 책 속에 아무렇지 않게 놓여 있는 사진 작품은 더 이상 어렵고 낯선 예술이 아니었다. 작품 제목을 보고 작품을 이해하는데 급급한 게 아니라 우연히 접하게 된 그 장소, 그 시간, 그때의 내 감정이 고스란히 작품 속에 녹아드는 듯했다.

전시장에서 접한 작품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이 행사의 마지막을 장식한 연주회는 ‘현대음악’이라는 거창한 제목이 달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설렘과 기대가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관객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한 사진, 동아리 선후배끼리 찍은 사진, 거울 속에 비친 사랑스런 아내의 사진, 친구와 함께한 해외여행에서 찍은 사진….

내가 가지고 있던 사진에 영감을 얻어 작곡한 곡이 흐르는데 누군들 음악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예술가의 창작세계와 나의 일상세계가 만나 하나의 작품이 탄생했다는 데에서 오는 묘한 흥분까지 더해져 다시 볼 수 없을 듯한 음악회 풍광이 펼쳐진 것이다.

이날 하루 동안의 경험은 나에게 ‘일상 속 예술’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을 품게 해주었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러면서 언제든지 생길 수도 있는, 그런 작은 사건과도 같이 예술은 항상 내 곁에, 우리 곁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예술이 책갈피 속 마른 단풍잎을 발견하고 젖게 되는 감회와 같은 것이 되길 바란다면, 예술을 너무 사소하게 보는 것일까.

서민정 문화예술교육진흥원 대외협력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