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김명호] 로자 파크스와 안철수

입력 2011-10-25 17:43


1955년 12월 1일 저녁, 나이 42세인 그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버스에 올랐다. 직업은 백화점 재봉사. 백인과 흑인 자리가 분리된 버스에서 그녀는 흑인 지정석에 앉았다. 하지만 버스 운전사로부터 백인 남성에게 양보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흑인은 백인 전용 자리가 비어 있어도 앉지 못한다. 흑인석에 앉더라도 백인이 서 있으면 양보해야 한다. 그 당시 앨라배마주 등 남부 지역의 법이었다. 운전사 요구에 나머지 3명의 흑인은 일어섰다. 하지만 로자 파크스는 거부했고, 바로 경찰에 체포됐다.

나흘 뒤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바로 그날부터 미국 흑인 인권사에 획을 긋는 ‘Montgomery Bus Boycott(몽고메리 버스거부 운동)’이 벌어진다. 흑인들은 버스를 타지 않고 걸으면서 인종차별에 항의했다. 조그만 동네 몽고메리에서 일어난 운동이 다른 동네로 확산됐다.

마틴 루서 킹 목사는 이 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키면서 일약 흑인 인권운동 지도자로 우뚝 선다. 이 운동은 연방대법원 판결이 있기까지 정확히 381일 동안 진행된다. 이 사건은 8년 뒤(1963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연설로 유명한 킹 목사의 워싱턴DC 대행진이 발생하게 된 계기가 된다.

미국인에게 파크스는 흑인 인권운동의 어머니이자, 킹 목사에 버금가는 존재이다. 몽고메리에 파크스 기념관이 있지만, 애틀랜타의 킹 목사 기념관에도 파크스를 기리는 방이 있다. 그곳에 가면 ‘파크스=민권, 자유, 평등, 불의에 대한 불복종’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파크스는 버스거부 운동을 진행하면서 정의가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줬다.

인종차별 역사를 가진 미국 정치에서 정의와 평등, 인권이라는 단어는 휘발성이 강하다. 정의와 평등, 인권이라는 개념에 반하는 행위로 간주되면 어떤 정치인이든 살아남지 못할 정도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편지 덕택에 로자 파크스라는 이름이 국내에서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안 교수가 인용한 깊은 뜻이 따로 있는지 모르겠지만, 편지 내용상 ‘변화를 위해 행동(투표)하라’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이번 서울시장 선거를 파크스의 정의, 인권, 불의에 대한 불복종과 연결해보려는 것은 어딘지 어색하다. 안 교수는 아마 지금 서울시민이 선택해야 할 기준 항목 1번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여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듯하다.

사실 2007년 한국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가치라는 항목을 별로 고려하지 않았다. 실용과 경제가 거의 전부였다. 그래서 애초 이 정부에 반대했거나, 기대했다 실망한 사람들은 ‘지금의 시대적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다시 떠올리고 있다. 반(反)한나라당 세력은 다음 대선에서 ‘가치’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이른바 가치투표 전략이다.

안 교수가 이런 생각에서 파크스를 인용했다면 어설프다. 적어도 가치를 논하려면 이 바닥에서 치열한 논리싸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안 교수의 업적과 대중적 인기를 폄훼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정치인 안철수의 등장을 다소는 긍정적이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편이다. 그가 정치판에 들어와 변화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정치판이 대중적 인기와 말 몇 마디로 성공할 수 있는 만만한 곳은 아니다. 아무리 정치가 비판받고 있지만 말이다.

이 글을 쓰는 24일 밤(미국 동부시간)은 파크스가 꼭 6년 전(2005년) 사망한 날이다. 하늘의 그녀가 네거티브가 판치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자신의 이름이 인용된 것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