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위징
입력 2011-10-25 17:42
당 태종 이세민은 우리나라에 유독 많이 알려진 중국 황제다. 고구려 안시성을 공격하다 왼쪽 눈에 화살을 맞고 퇴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다시는 고구려를 침략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정사에 나오는 얘기는 아니고 고려시대 학자 이색이 풍문으로 전해오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비록 형제를 죽이고 권력을 잡았지만 그는 영민한 인물이었다. “군주가 된 자는 영재를 활용할 때 마음을 다해 대우한다.”(구당서) “비천한 사람이라 하여 임용하지 않은 일이 없고, 멸시받는 사람이라 하여 존중하지 않은 적이 없다.”(제범 권1, 구현) 여러 사서를 통해 전해지는 그의 말은 수백년 흐른 지금 되새겨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중국을 동 시대 세계 최강국으로 만든 태종 곁에는 바른 말로 주군을 모신 신하 위징(魏徵·580∼643)이 있었다. 위징은 원래 태종의 형 건성의 최측근으로 활약했다. 쿠데타에 성공한 태종이 그의 인품과 실력을 믿고 중용한 것이다. 적의 브레인을 자기 측근으로 활용한 태종의 용인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태종의 집권 초기 백성에 대한 착취가 심해지자 위징은 이렇게 건의했다. “신이 듣건대 못을 말려 고기를 잡으면 고기를 잡지 못하지는 않겠지만 내년에는 고기가 아예 없을 것입니다.”(위정공간록) 못을 말려 고기를 잡는다는 것은 가렴주구를 뜻하는 말로 선정을 권유한 것이다. 또 정관의 치 후기에 태종이 사치에 빠지자 그는 유명한 십점소(十漸疏)를 올렸다.
초기의 관대하고 순박한 정치가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사치와 방종에 몰두해 겸허와 검약을 소홀히 여기는 태종을 위해 충언을 한 것이다. 십점소에는 군주가 매사를 소홀히 하면 작은 일이 점점 커져 큰 화가 되므로, 검소하고 덕음을 들어야 한다는 등의 열 가지 사항이 적혀 있다. 태종도 그 소본(疏本)으로 병풍을 만들어 좌우에 두고 몸가짐을 바로했다고 한다.
일전에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 쪽엔 왜 저런 인물이 없느냐”며 민주당 이용섭 의원을 반 공개적으로 칭찬한 적이 있다. 도곡동 사저 문제가 정치쟁점화됐을 때 이 의원이 주도해 검찰 고발 명단에서 대통령 내외를 뺀 직후였다. 수뇌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의원은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며 소신대로 처신했다. 현군 곁에 명신이 있었다는 교훈을 되새긴다면 지금 권력 핵심에 필요한 사람은 위징 같은 인물이 아닐까.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