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 목사의 시편] 깊은 상처 속에 담긴 아름다움

입력 2011-10-25 17:54


상처 가운데 깊은 상처가 있다. 깊은 상처는 많이 아프다. 치유하는 데 오랜 세월이 걸린다. 상처처럼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몸의 상처도 힘들지만 마음의 상처는 더욱 힘이 든다. 마음의 상처가 더욱 힘이 드는 까닭은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상처를 받으면 움츠러든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싫고 두려워진다. 피해의식이 생긴다. 사람이 사랑의 대상으로 보이지 않고,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면 자꾸 과거 속에 살게 된다. 과거에 갇혀 살게 된다. 인간은 꿈을 가지고 미래지향적으로 살 때 가장 생동감이 있는데 과거에 사로잡혀 살게 되면 무력해진다.

상처는 치유되어야 한다. 몸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면 고름이 생기고, 냄새가 나고, 썩게 된다.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다. 치유되지 않으면 마음에 원한이 쌓이고, 자꾸 남을 탓하며 살게 된다. 인생을 보는 시각이 어두워지고, 밝은 면을 보지 못하게 된다. 상처 때문에 날카로워져서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인생을 살게 된다.

상처받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상처 때문에 모두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상처를 잘 치유하고, 상처에 잘 반응하면 상처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생애를 살 수 있다. 이것이 상처의 신비다. 산다는 것은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다. 그런 까닭에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상처는 사랑 때문에 받는 경우가 많다. 사람은 사랑 때문에 상처를 받고, 상처를 준다. 그렇다고 사랑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사랑 때문에 받은 상처는 더 큰 사랑으로 치유될 수 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치유하지 못할 상처는 없다. 하나님의 사랑에 접촉되는 순간 상처는 치유된다.

예수님은 상처 입은 치유자시다. 예수님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상처를 다 받으셨다. 그렇지만 예수님에게는 억울함이나 원한이 없으셨다. 그 비밀은 용서에 있다. 상처를 치유하는 길은 용서에 있다. 상처를 입힌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용서해야 한다. 상대방을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을 위해서 용서하라. 용서를 넘어 감사하라. 감사한다는 것은 수용한다는 것이다. 감사로 상처를 끌어안으라. 그때 상처를 진주로 만드는 과정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상처가 클수록 진주의 영광도 크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에 상흔(傷痕)이 있었다. 예수님의 깊은 상처가 주님의 영광이 된 것이다. 깊은 상처는 깊은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그랜드 캐니언은 상처 깊은 땅의 아름다운 자태(姿態)다. 십자가는 상처 깊은 예수님의 영광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십자가 앞에 나아가 치유를 받고, 그 영광 앞에 머문다.

강준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