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없는 개발 줄 잇는데… 동북아 환경감시는 ‘空助’

입력 2011-10-25 21:38


러시아에서 북한을 통과해 한국으로 이어지는 가스관 건설사업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이런 사업을 추진하기 앞서 부정적 환경영향을 받게 될 나라에 사업계획을 미리 알리고 예상되는 영향을 검토·분석·평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국가간(월경성) 환경영향평가(TEIA)는 그 같은 과정을 통해 부정적 환경영향을 제거하거나 감소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 다른 지역과는 달리 동북아시아에서는 아직 TEIA 사례나 국제협정이 없다. 중국의 부정적 태도, 일본의 소극성 등이 원인이다.

한국은 해마다 중국으로부터 불어오는 황사로 피해를 당하지만 속수무책이다. 특히 서해 연안 중국 도시에 대규모 공단이 생긴 뒤 인체에 유해한 중금속 성분이 황사 안에 많아졌지만 오염자가 이를 완화하는 부담을 진다거나 응분의 보상을 하는 절차가 없다. 한·중·일 3국 환경장관이 매년 회담을 열지만 오염물질의 국경 간 이동에 관한 실태조사 정도에 그치고 있다.

국경과 인접해 대규모 개발사업이 진행될 경우 대기오염, 국경을 넘는 하천을 통한 수질오염, 해양유류오염, 생태계 영향 등 여러 분야에서 나라 간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 동북아에서도 대륙횡단철도의 한국 연결계획, 경부고속도로를 잇는 아시안 하이웨이계획. 한·중 및 한·일 해저터널 연결 구상 등이 그런 부정적 환경영향을 미리 살펴봐야 하는 대형 개발사업의 사례다.

예상되는 또는 잠재한 국가 간 환경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동북아지역에서의 월경성 환경영향평가(TEIA)에 관한 제8차 워크숍이 지난 12일부터 사흘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렸다. 해마다 번갈아 주최국을 맡는데 올해에는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과 환경부가 주최한 회의에 한국 러시아 몽골 대표단이 참가했다.

◇현황=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 지역에서는 국경 간 환경분쟁 경험과 그것을 토대로 나라 간의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호협약을 통해 TEIA를 도입했다. 유럽에서는 1997년 발효된 에스푸(핀란드 도시 명칭)협정이 가장 활발하다. 현재 45개국이 가입했고, 연간 100건에 가까운 개발사업에 TEIA를 적용한다. 이란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러시아 등으로 둘러싸인 카스피해의 계속되는 수질 및 생태환경 악화를 방지하기 위해 연안 국가들은 카스피해 환경프로그램(CEP)를 구성하고 2003년부터 TEIA를 시작했다.

북미지역에서는 93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따라 미국 캐나다 멕시코 3국이 북미환경협력에 관한 협정(NAAEC)을 체결했다. 이어 97년 3개국 간 TEIA를 실시토록 하는 권고조항을 담은 초안을 작성했지만 미국이 최종서명을 미뤄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다. 그 밖에도 다뉴브강 보호 및 지속 가능 개발을 위한 협정, 오염방지를 위한 지중해 보호협약, 남태평양 지역 자연자원 및 환경보호를 위한 협약, 카리브 지역 해양환경 보호 및 개발을 위한 협약 등이 모두 TEIA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동북아와 아프리카에만 TEIA에 관한 협정이 없다.

◇TEIA의 절차=개발추진국(Country of Origin)과 영향을 받는 국가(Affected Party) 간의 상호협의에 의해 진행된다. 에스푸협정에 제시된 절차에 따르면 먼저 개발추진국이 영향을 받는 국가에 사업내용을 통지해야 한다. 국내에서 시행되는 환경영향평가와는 달리 영향을 받는 국가에서 월경성 환경영향평가에 참여하기를 희망하지 않을 경우 모든 절차는 그 시점에서 중지된다. 단 영향을 받는 국가가 아무런 통지를 못 받았어도 악영향이 예상된다면 개발추진국에 논의를 요구할 수 있다. 영향을 받는 국가의 정부뿐 아니라 국민들도 개발사업과 환경영향평가 보고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필요한 정보를 요구할 권리를 가진다.

환경영향평가의 비용은 오염자 부담원칙이 우선적으로 적용된다. 따라서 개발추진국이 환경영향평가 및 보고서 작성과 관련된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영향을 받는 국가에 대한 환경영향 정도를 평가해 사업추진 여부를 판단하는 최종 결정사항은 개발추진국에서 작성한다. 최종 결정문에는 반드시 영향을 받는 국가의 검토 또는 자문의견 및 수렴된 주민의견이 어떻게 평가서에 반영됐는지를 명시해야 한다. KEI 이영준 연구위원은 “TEIA의 주요 쟁점은 정보의 교환방식, 책임지는 기관의 선정, 평가대상악영향의 범위, 주민참여 의무화 정도 등인데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다는 게 난관”이라고 말했다.

◇동북아에서의 전망=동북아 국가들은 2004년 이후 8년째 개최국을 바꿔가며 TEIA 워크숍을 열고 있다. 그러나 한국 북한 러시아 중국 몽골 일본 가운데 중국이 개발사업에 지장을 초래할 것을 우려해 부정적이다. 편서풍의 영향으로 다른 나라에 환경적 해악을 끼치는 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국가와 바다를 사이에 둔 일본은 동북아 TEIA 워크숍에 2010년 한 차례 참여했을 뿐이다. 북한도 2006년 러시아에서 열렸을 때만 참석했다. 이영준 연구위원은 “러시아는 중재자 역할에 머무르고, 일본은 자국 산업이 집중 배치된 메콩강 지역 TEIA에 몰두하느라 소극적”이라고 말했다.

노태호 KEI 연구위원은 “동북아지역의 경제성장이 급속하고 개발압력이 높아 TEIA 도입이 시급하다”면서 “러시아∼북한∼한국 가스관, 대륙횡단철도의 한국 연결계획, 연해주 등 생물다양성의 보고인 연해주의 한국호랑이 공동복원계획 등도 추진할 만하다”고 말했다. 문난경 KEI 연구위원은 “동북아 TEIA의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해 쑹화강 오염, 아무르강 벤젠 유출, 몽고∼중국 철도 등에 대해 파일럿 스터디(준비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대표로 참석한 자연보호연구원 극동지부의 올가 에고로바 부국장은 “각국의 TEIA 시스템을 보다 실질적인 활동, 사업 등에 비춰 비교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예를 들면 러시아의 경우 석유 사업이나 해양개발 사업 등을 선정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북아지역 TEIA 대상사업에 대해 이영준 연구위원은 “대기질과 수질 및 동·식물상(생태계)을 우선적으로 필요한 주요 평가항목으로 설정하고 바다를 공유하는 한국과 중국은 해양환경을 포함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블라디보스토크=글·사진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