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내음 사라져가는 위기의 대구 약령시… 백화점 들어선 뒤 임대료 ‘껑충’ 350년 전통 ‘흔들’

입력 2011-10-24 21:24


24일 오전 11시 대구 남성로 약령시(藥令市·약재상들이 모여 형성된 거리). 골목에 들어서자 약재상들 사이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커피전문점과 미용실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셔터가 내리고 가게 이전을 알리는 안내문을 붙인 약재상도 곳곳에 있었다. 약령시 코앞에 지난 8월 중순 현대백화점이 들어선지 두 달여 만에 벌어진 일이다.

350년 전통의 약령시는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 약령시보존위원회(이하 보존회)에 따르면 불과 1년 전 만해도 200여곳의 약재상이 성업하던 이곳은 백화점 개점 후 179곳으로 줄었다. 오는 12월 백화점 주차장이 들어서게 되면 더 많은 점포가 문을 닫을 것으로 보존회 측은 내다봤다. 이처럼 상인들이 약령시를 떠나는 이유는 백화점이 들어선 이후 임대료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평균 월세가 30만∼40만원이었던 데서 최근 100만원까지 뛰었다. 30년 넘게 약령시 한복판에서 장사를 했던 이모(51)씨는 “임대료 때문에 골목 안쪽 후미진 곳으로 가게를 옮겼다”며 “올 연말 임대계약이 끝나면 다른 곳을 알아봐야 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백화점으로 인해 유동인구가 증가해 손님도 덩달아 늘어날 것이란 기대도 물거품이 됐다. 이곳을 지나는 젊은 사람들은 늘었지만 백화점으로 가기 위해 이곳을 통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상인들의 설명이다. 김모(54)씨는 “월요일이 제일 바쁜 시간인데 오전 11시까지 손님 한명도 없었다”고 혀를 찼다.

상인들의 걱정거리는 이뿐만 아니다. 이달 1일부터 보건복지부가 당귀, 천궁 등 국산 한약재 14개에 대해 ‘한약재 자가포장’을 금지했다. 이 때문에 상인들은 값이 비싼 제약회사 제품을 구입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에 상인들은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보존회는 영리법인 ㈜대구약령시를 설립해 다음달 1일 현판식을 갖고 홍삼과 쌍화차 등의 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다.

대구=글·사진 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