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전기 나왔다] 병원 마스크까지 집착…“5개 디자인 가져와”

입력 2011-10-24 21:55


애플 공동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기행으로 유명한 괴팍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젊은 시절에는 채식과 금식에 매료된 히피였다. 사과와 채소만 먹는 극단적 식습관은 암 투병 시기 섭식장애로 이어졌다. 그는 병상에서조차 마스크 모양을 트집 잡을 만큼 디자인에 민감한 강박증 환자였고, 자신을 치료하는 의사의 프레젠테이션 잘못을 지적한 완벽주의자였다. 한편으로는 ‘주위 사람들을 분노와 절망으로 몰아가는 악마 같은 면’을 지닌 독설가인 반면, 아들의 고교 졸업식 날을 “내 생애 가장 행복한 날 중 하나”로 꼽은 따뜻한 아버지이자 “(당신과 함께) 황홀하지 않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고백한 로맨틱한 남편이기도 했다.

잡스의 아내는 남편의 전기를 준비하던 월터 아이작슨(CNN 및 ‘타임’ 전 편집장)에게 “그(잡스)의 인생과 성격에는 극도로 지저분한 부분도 있다. 그게 진실이다. 그런 것들을 눈가림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2009년부터 2년간 40여 차례에 걸쳐 잡스를 인터뷰한 아이작슨은 가족과 친구, 친척, 경쟁자, 적수 100여명도 만났다. 적과 친구가 고루 섞인 증언을 통해 아내의 당부는 실현됐다. 24일 전 세계 20여개국에서 동시 출간된 잡스의 첫 공식 전기 ‘스티브 잡스’(민음사)에는 ‘혁신의 아이콘’ 잡스의 빛나는 성취뿐만 아니라 ‘조작이나 왜곡에 능한’ 거짓말쟁이의 면모까지 담겨 있다.

◇강박적 완벽주의자 잡스=투병 중 잡스는 자신이 통제권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에 약 올라했다. 폐 전문의가 얼굴에 마스크를 씌우려 하자 그는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새 마스크를 5개쯤 가져오라고 우겼다.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할 만큼 병세가 나쁠 때였다.

잡스는 늘 ‘뉴욕현대미술관에 전시될 만한 수준’의 제품을 요구했다. 끝없는 수정은 불가피했다. 애플Ⅱ의 플라스틱 케이스 색깔을 결정하기 위해 색상 전문 업체가 보유한 2000가지 베이지색을 검토한 끝에 잡스는 ‘좀더 다른 베이지색’이 있는지 물었다. 디자이너들은 경악했다.

컴퓨터 화면 속 제목 표시줄도 20개 이상의 샘플이 제작됐다. 너무 까맣고 거칠다는 이유에서였다. 디자이너가 ‘사소한 데 시간을 허비한다’고 불평했다. 잡스가 폭발했다. “그걸 매일 쳐다봐야 한다는 것은 생각해보지 못했소? 사소한 게 아니야, 제대로 해야 하는 거라고.”

잡스는 포르셰, 메르세데스, 헨켈, 브라운, BMW 오토바이, 뱅앤올룹슨 오디오 등 명품 디자인에 열광했다. 눈에 드는 물건이 없으니 살림은 단순함의 극치였다. 아내는 “우리는 사실상 8년 동안 가구를 구입하는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한 셈”이라고 말했다.

◇잡스, 가족, 그리고 마지막 날들=어릴 적 입양된 잡스는 자신의 부모를 누군가 ‘양부모’라고 부르거나 혹은 ‘진짜’ 부모가 아니라고 말하면 발끈했다. “그들은 1000% 제 부모님”이라고 했고 친부모에 대해서는 “그들은 나의 정자와 난자 은행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했다. 책에 처음 공개되는 아버지 폴 잡스와의 사진도 지난 8월 침대에서 간신히 몸을 일으킨 잡스가 직접 골랐다.

훗날 생모 조앤 심프슨을 찾은 이유에 대해서는 ‘생물학적 뿌리에 대해 궁금해하는’ 호기심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고 설명했다. “낙태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은 일이 고맙게 여겨졌어요.”

아내 로렌 파월과의 사이에 1남2녀를 둔 잡스는 큰아들 리드를 유달리 좋아했다. 몸이 안 좋은 잡스가 유일하게 표정이 밝아지는 순간은 ‘리드가 들어올 때뿐’이었다. 또 암의 장점으로 ‘리드가 의학과 유전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을 꼽기도 했다.

죽기 얼마 전에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3시간 넘게 대화하기도 했다. 개인사와 암 투병, 미래 학교에 대해 대화한 끝에 게이츠는 이런 고백을 했다. “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모델이 이길 거라고 믿었어요. 그런데 당신이 통합적이고 수직적인 (애플의) 모델 역시 훌륭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습니다.”

◇아이패드에 삼성 칩 쓴 사연은=애플이 아이패드에 인텔 대신 삼성의 칩을 사용하기까지는 긴 논쟁이 있었다. 애초 잡스는 인텔이 개발 중인 낮은 전압의 아톰 칩을 사용할 계획이었다. 토니 파델 수석 부사장의 반대에 잡스가 양보한 것. 하지만 소극적 수용이 아니었다. 한번 방향을 튼 잡스는 반대 극단으로 달렸다. 새 칩 개발을 위한 라이선스를 얻은 뒤 회사를 인수했고 이를 기반으로 아예 새 칩을 한국의 삼성에서 제조하도록 했다.

책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죽은 후에도 나의 무언가는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고 싶군요. 그렇게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어쩌면 약간의 지혜까지 쌓았는데 그 모든 게 그냥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그래서 뭔가는 살아남는다고, 어쩌면 나의 의식은 영속하는 거라고 믿고 싶은 겁니다.(오래 말을 멈췄다가)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전원 스위치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딸깍!’ 누르면 그냥 꺼져버리는 거지요. 아마 그래서 내가 애플 기기에 스위치를 넣는 걸 그렇게 싫어했나 봅니다.” 잡스에게 그가 만든 제품은 곧 자신의 삶이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