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銀 대학생 대출 이런식이니… 교직원 사칭 신원 확인 부모도 모르게 돈 보내

입력 2011-10-24 22:06


김미숙(가명·50·여)씨는 지난해 6월 16일 오후 의문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아들 박종길(가명·21)씨가 다니는 지방 Y대학교의 행정실 직원이라고 했다. 직원은 “학교 홈페이지를 만드는 중인데 확인할 것이 있다”며 “아들이 학교에 계속 다닐 계획이냐”고 물었다. 김씨는 대답을 하면서도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아들은 지방대에 다니는데, 발신 지역번호는 서울을 의미하는 ‘02’로 찍혀 있었다.

김씨는 해당 번호로 수십 차례 전화를 걸었고, 다음날 발신지가 대학 행정실이 아닌 현대스위스2저축은행인 것을 알게 됐다. 김씨가 교직원이라는 사람과 통화한 직후 이 저축은행은 아들 박씨의 계좌로 수수료 14만5000원을 제한 485만5000원을 송금했다. 아들 박씨가 “부모 모르게 대출금 수령이 가능하다”는 인터넷 광고를 보고 대출중개인과 연락해 이 저축은행의 ‘알프스대학생대출’로 500만원을 빌렸고, 저축은행 측은 자신의 신분을 감춘 채 신원을 확인한 것이다.

김씨는 발신지인 서울 삼성동에 있는 이 저축은행 지점에 찾아가 왜 대학교 행정실 직원을 사칭해 자신과 아들의 신원을 확인했는지 따졌다. 저축은행 담당자는 “신원 확인 시에는 대출 사실을 남에게 알리지 않기 위해 저축은행임을 밝히지 않는다”고 답했다. 김씨는 “경우에 따라 택배회사나 퀵서비스업체로 소개하기도 한다”는 말도 들었다. 김씨가 계속 문제를 제기하자 저축은행은 그 해 7월 16일까지 원금 500만원만 갚으면 이자는 면제해 주겠다고 생색을 냈다.

김씨는 사건을 공론화해 다른 대학생들의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상환을 미룬 채 금융감독원에 고발성 민원을 제기했다. 아들의 신용 문제가 걸려 있었지만, 교직원까지 사칭하는 대출 심사를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지난해 7월부터 1년여 동안 4차례 민원을 제기하고 저축은행에 대한 제재를 촉구했다. 하지만 금감원의 회신은 의외였다. 금감원은 저축은행의 교직원 사칭 사실을 확인하고서도 “저축은행이 자체 경고조치를 취했다”며 “당사자끼리 원만하게 협의하라”고 안이하게 회신했다.

금감원이 말한 경고조치란 저축은행이 김씨에게 전화를 건 상담원 1명에게 인사경고를 내린 것에 불과했다. 김씨가 올해 6월 세 번째 민원을 제기하자 금감원은 “민원인과 저축은행의 주장이 상이하다”는 희한한 대답을 내놨다. 이달 5일 제기한 네 번째 민원에 대해서는 “대출 당사자가 아니므로 해결이 곤란하다”며 또 회피했다.

김씨가 저축은행의 사과와 금융당국의 재발방지 대책, 불어난 이자에 대한 조치를 기다리는 동안 500만원이던 아들의 부채는 690만원으로 늘어났다. 아들 박씨의 신용등급은 전체 10등급 중 9등급으로 추락했다. 저축은행은 “채무 변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며 지난 5일 박씨에게 급여가압류 예정 통보서를 보냈다. 김씨는 24일 “은행도 금감원도 대출행태엔 별 문제가 없다는 식”이라며 “이런 무책임한 대처로 대학생 신용불량자가 늘어나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