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 死後] 물·전기도 없는 버려진 집 전전… 도망자 카다피 최후의 나날

입력 2011-10-24 01:09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죽기 전 권력의 무상함을 깨달았을까. 카다피는 지난 8월 23일 트리폴리의 요새 밥 알아지지아를 떠난 이후 2개월 동안 물도 전기도 없는 곳에서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하고 숨어 지내야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22일(현지시간) 카다피와 함께 붙잡힌 최측근 인민수비대 사령관 만수르 다오 이브라힘과 인터뷰를 해 카다피가 보낸 비참한 최후의 시간을 보도했다.

다오에 따르면 카다피는 트리폴리가 함락되자마자 측근과 수행원 약 10명만을 데리고 고향 시르테로 향했다.

카다피의 고향 생활은 처참했다. 버려진 가옥을 돌아다니며 남겨진 쌀과 파스타 등으로 연명해야 했다.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2~3일마다 거처를 옮겼다. 전기도 물도 없었다. 그는 외부와 고립된 채 주로 코란을 읽거나 전화통화를 했다고 한다. 이런 생활을 못 견딘 카다피는 “왜 전기가 안 들어오느냐” “왜 물이 없느냐”며 자주 역정을 내곤 했다.

한 번은 포탄이 거처에 떨어져 경호원 3명과 요리사가 부상을 당했다. 이때부터 카다피는 음식도 직접 만들어 먹어야 했다.

카다피와 외부 세계를 연결해 주는 유일한 끈은 위성전화뿐이었다. 이를 이용해 투쟁을 독려하는 육성 메시지를 시리아 방송사로 전달했다.

2주 전 시민군의 포위망이 좁혀오자 카다피 부자는 ‘제2구역’에 있는 주택 2곳을 오가며 공격을 피해 다녔다. 결국 카다피는 거처를 생가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20일 오전 8시 이동을 시작했고 30분 만에 나토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영국의 선데이타임스는 23일 카다피가 몸을 숨겼던 시르테의 주택을 소개하며 가구가 거의 없는 거실은 녹색 군복이 흩어져 있는 등 을씨년스러웠다고 전했다. 벽에 걸린 사진에는 해군사령관 제복을 입은 카다피 모습에 그의 자필 서명이 들어 있었다. 시민군 병사들은 카다피가 입은 것으로 보이는 붉은색 꽃무늬 실크 조끼와 고급 금색 줄무늬 넥타이, 이탈리아제 셔츠를 들어보였다. 인스턴트 식품으로 연명하면서도 카다피는 끝까지 화려함을 고집한 것 같다고 타임스는 지적했다.

한편 카다피가 세상에 남긴 은닉자산의 규모가 2000억 달러(약 230조원)를 넘어선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일간 걸프뉴스는 23일 예금과 부동산, 각종 채권, 금 등 전 세계에 카다피가 숨긴 자산이 2000억 달러 이상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이는 640만명에 달하는 리비아 국민 1인당 3만달러씩 나눠줄 수 있는 규모로 지금까지 서방에서 추산한 액수의 두 배에 달한다.

양지선 기자 dyb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