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유중근 대한적십자사 총재] “정부 창구역할뿐만 아니라 대북 정책 건의도 할 것”

입력 2011-10-23 22:48


창립 106년 만에 첫 여성 수장에 오른 유중근(66) 대한적십자사(한적) 신임 총재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국민의 1%인 50만명 정도가 직접 적십자 봉사원으로 참여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유 총재는 또 “1400여 적십자 봉사원을 북한 이주민들의 정착 도우미인 ‘적십자 보드미’로 브랜드화해 12월 초에 공식 출범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청소년적십자(RCY) 단원 및 교장, 교감 등 은퇴한 우리 교육자들과 북한 이주민이나 자녀들과의 결연을 통한 멘토링 프로그램을 올해 안에 시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1일 서울 남산동 한적 총재실에서 1시간여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유 총재는 시종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이산가족 상봉과 북한 이주민, 다문화가정 지원 등 관심사에 대해서는 강한 어조로 자신의 소견을 밝혔다.

-언론에 106년 혹은 62년 만의 첫 여성 수장이라고 제각각 보도됐는데.

“나도 의아해서 찾아봤다. 대한적십자사는 1905년 고종 황제의 칙령에 의해 창립됐기 때문에 역사 전부를 놓고 보면 106년이 맞다. 다만 대한민국정부 수립 후 1949년에 제도와 조직이 조정돼 총재, 부총재 직함이 생겨서 그때부터 따지면 62년이 된다.”

-안팎에서 여성 총재에 대한 기대가 남다르다. 각오는.

“고종 황제가 적십자사를 만들면서 하신 말씀 중에 ‘널리 구제하고 고루 사랑하라’는 말을 귀하게 여기고 있다. 며칠 전에 충남 서산에서 염전을 하는 한 적십자 봉사가족으로부터 우편으로 소금 한 자루를 받았다. 격려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담긴 것 같다. 소금은 스스로 녹아지면 자기는 없어져도 맛을 내고 부패를 막아준다. ‘사랑과 봉사’를 중요한 가치로 삼는 적십자사가 이런 소금의 사명을 다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가까운 선배들로부터는 초를 선물받았다. 스스로를 태워서 빛을 내는 촛불처럼, 세상의 빛이 되라는 의미지 않겠나.”

-한적이 걸어온 길을 평가하고 앞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나.

“오는 27일이 창립기념일이다. 한적은 지난 106년간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함께하며 봉사활동의 큰 나무로 성장했다. 그 나무에는 재난구호,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봉사, 헌혈 등 보건·위생사업, 청소년적십자(RCY) 활동, 남북교류 등 5가지의 굵직한 줄기들이 자라나고 있다. 다원화·전문화되는 시대 흐름에 맞춰 봉사 방법과 프로그램도 달라져야 한다.”

-남북교류 사업 중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특별히 관심이 큰데.

“한적 총재가 되고 난 뒤 주위 분 10명 중 8명 정도가 남북교류 문제를 묻는다. 그중에서도 이산가족 상봉은 시한성이 있는 만큼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추진돼야 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지난해까지 18차례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다. 하지만 여러 정치적, 남북 간 문제로 인해 올해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얼마 전 올해 남은 짧은 기간에라도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을 얘기한 적이 있는데, 언론에 그 일이 성사될 거라고 보도돼 많이 당황했다. 하지만 저뿐 아니라 국민적 열망인 만큼 서로 다시 어우러져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지난해 10월 남북적십자회담에서 상봉 정례화와 인도적 협력사업에 대한 의견 교환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추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대북 수해 지원은 불발로 끝났는데.

“대북 수해 지원은 북측이 호응해 오지 않아 종결된 사안이다. 이달 초 북측에 전달하려고 준비한 물자(영·유아용 영양식 23만개)는 유통기한이 있는 만큼 정부가 처분 절차를 진행 중에 있다. 국내 저소득층에 지원될 것으로 안다. 하지만 북측에 자연재해가 발생할 경우 기꺼이 도움에 나설 것이다. 북한 어린이 문제는 우리 미래의 일인 만큼 앞으로도 더욱 관심을 갖고 다른 기관과 협력해 지원 창구를 넓히겠다.”

-남북 교류는 정부의 간섭과 정치적 상황에 좌우되기 쉬운데.

“대규모 대북지원 등 정부 재원을 기반으로 하는 사업은 일정부분 정부와 협조해 진행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적십자사 간 교류협력 사업은 인도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인 만큼 정치 상황과 관계없이 자율성과 독립성을 갖고 추진해 나갈 생각이다. 또 우리가 일을 하고 싶어도 북측이 손뼉을 마주쳐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일을 적십자가 할 수 있다. 적십자사는 정부가 하라는 대북 창구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창구역할을 잘 할 수 있게끔 정부에 건의도 하고 대책도 내야 한다.”

-취임 때 밝힌 북한이주민 지원에 대한 구체적 계획은.

“적십자는 북한이탈주민, 새터민 등 용어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북한이주민’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현재 2만3000여명에 이르는 북한이주민의 국내 정착을 돕고 보살피는 1400여 적십자 봉사원들에게 ‘보드미’라는 특별한 이름을 부여해 12월 초 발대식을 갖고자 한다. 보드미 엠블럼은 이미 완성됐다. 통일의 초석이 될 북한 이주민들의 ‘정착 도우미’로서 봉사원들은 좀 더 열정과 자긍심을 갖고 그들의 취업, 교육, 심리적 치유 프로그램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하게 된다.

또 북한이주민 자녀들은 RCY 단원과 ‘친구 맺기’, 20∼30대 젊은 북한이주민은 은퇴한 교육자들(교장, 교감)과 결연활동을 통한 ‘멘토링 프로그램’을 올해 안에 시작할 계획이다. 은퇴 교육자들은 우선 고교와 대학동창 중에 의사가 있는 분들을 모집할 생각이다. 북한 이주민의 자립과 국내 적응을 돕는 데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다문화 가정 등 사회 취약계층 지원도 약속했는데.

“다문화 가정은 경기도 고양과 경남 밀양 등 2곳에 운영 중인 다문화가족지원센터 프로그램(모국 방문, 한글교실 등)을 더욱 확대해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 특히 적십자봉사원들과 다문화 여성 간 ‘친정엄마 결연’을 더욱 늘려 정서적 지원을 강화하고 다문화봉사회 결성도 적극 지원할 것이다. 이밖에 2005년부터 펼쳐 온 전국 독거노인과 적십자봉사원 결연 및 지원사업, 2006년부터 시작한 조손가정 대상 주거환경 개선, 장학금 지원 등 ‘징검다리 사랑 네트워크’ 프로그램도 지속적으로 늘려가겠다.”

-국내외 재난구호 및 봉사 활동에 대한 생각은.

“최근 물난리로 큰 피해를 겪고 있는 태국 지원을 신중히 검토 중이다. 아직 태국적십자사에서 공식 요청이 오진 않았지만 국제적십자사연맹 등과 긴밀히 협력해 지원 방안에 대해 고민하겠다. 특히 재난구호의 체계화를 위해 노력하겠다. 한적에는 10만4000여명의 봉사원, 23만5000명의 RCY 단원, 250만명의 헌혈자가 있다. 우리의 목표는 전체 국민의 1%가 봉사원이 되는 것이다. 우리 국민 5000만명 중 50만명이 나눔과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현재 50대 이상 봉사자들이 많은데, 큰 자산이라 생각한다. 이들의 봉사를 시간당 8600원으로 산정하면 약 660억원의 자산가치가 나온다. 앞으론 20∼30대 젊은층의 봉사 참여 기회를 늘렸으면 한다.”

-매년 국정감사에서 지적받는 혈액사고에 대한 안전성 확보 방안은.

“혈액 사업은 최근 혈액 수가 인상과 경영개선 노력 등을 통해 재무건전성이 확보됐다. 보다 안전한 혈액 공급을 위해 현재 에이즈와 C형 간염에 대해서만 시행하는 ‘핵산증폭검사(NAT)’를 앞으로 B형 간염까지 검사할 수 있는 새로운 장비 15대를 내년 4월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 NAT는 바이러스를 체외에서 증폭시켜 검사하는 장비다. 또 현재 위험 및 주의지역(서울·경기·강원)에서만 하고 있는 말라리아 항체검사를 향후 전국으로 확대할 생각도 있다. 이밖에 각종 혈액사고를 사전에 점검하고 예방할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헌혈 및 혈액관리체계를 재검토하겠다.”

유중근 총재는

소탈한 성품에 리더십과 포용력을 겸비했다는 평을 듣는다. 언론에 많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묵묵히 사회봉사 활동을 벌여온 여성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한적에서는 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장 등을 맡아 소외계층 지원과 봉사에 앞장서 왔다. 저소득층 도시락 지원과 각종 기부 및 봉사 활동으로 유명한 최창걸 고려아연 회장이 남편이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유 총재는 서울 온누리교회를 6년째 다니고 있으며 현재 권사다. △경기여고,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미국 컬럼비아대 영어언어교육학 석사 △김활란장학회 감사 △경원문화재단 이사장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