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배려·사랑 담은 ‘영원한 여성상’ 그려… 원로 조각가 최종태, ‘구원의 모상’ 개인전
입력 2011-10-23 17:30
인간 내면의 아름다움을 인물 조각으로 표현하는 원로 조각가 최종태(79)의 개인전 ‘구원(久遠)의 모상(母像)’이 다음 달 13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 2007년 이후 4년 만에 개최하는 이번 전시에서는 색을 칠한 나무 조각과 브론즈, 돌 조각 등 40여점, 여성을 대상으로 그린 수채화와 파스텔화 20여점 등 모두 60여점을 선보인다.
지난 주말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어린 시절 고향(대전) 근처 산의 형태가 내 조각이 되고 강 건너 풍경은 내가 그리는 그림이 됐다”며 “사람의 일생이란 어릴 때 바탕에 있던 것을 완성하는 과정이 아닐까”라고 작업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이번 전시에는 오방색 같은 원색을 입힌 목조각이 대거 나왔고 그동안 선보였던 파스텔화 대신 수채화가 늘어난 것이 특징이다.
그는 “초등학교 때 수채화를 했는데 최근 수채화로 다시 마음이 움직였다”며 “어릴 때 했던 것이 내 안에 묻혀 있다가 수십 년이 지난 이후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에는 기도하듯 두 손을 모은 단아하고 동양적인 여인상이 많다. 작품 속 인물들은 자식들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기도 하고 인류 구원의 성모이기도 하다.
“1980년대 초 서울 인사동에서 파스텔 전람회를 열었는데 은사 한 분이 방명록에 ‘여성적인 것. 영원한 것’이라는 글을 남기셨어요. 30년 전인데도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요. 며칠 전에야 괴테가 ‘파우스트’에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고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요. ‘여성적’이라는 단어에는 ‘수용’ ‘배려’라는 의미가 담겨 있고 ‘사랑’과도 일맥상통하지요.”
작가는 ‘구원의 모상’이라는 전시 타이틀에는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했다. 젊은 시절, 작품 활동을 제대로 하려면 이론적 토대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동서양 미술사를 독학으로 연구하며 세계 곳곳을 누볐다고 한다. 그는 “한국의 맥을 오늘에 살려야겠다고 결심했던 것인데 동서고금을 다 찾아다녔지만 결국 내 가슴 속에 있더라”며 웃었다.
서울대 미대에서 조각가 김종영과 화가 장욱진을 스승으로 모신 그는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두 작가의 장점을 살려 자신만의 예술세계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50년간 인물 조각을 고집해온 그에게 지겹지는 않느냐고 물었다.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안 할 수가 없어요. 피카소가 ‘나는 붓을 집어드는 것은 쉬운데 놓는 것은 어렵다’고 했는데 그 정도 경지에는 못 미치지만요.”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수평선을 보며 영원성과 무한함에 대해 떠올린다는 작가는 “작품의 형태는 인체일지 모르나 내용은 인간의 문제를 다룬다”고 한다. 잔잔한 미소를 띠는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 영원한 사랑의 파노라마를 펼쳐 보이는 전시다. 서울 전시가 끝나면 11월 중순 대구 대백프라자와 수성아트피아에서도 전시가 이어진다(02-720-1020).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