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테레사] 그 말(馬)이 보고 싶다

입력 2011-10-23 17:43


요즘 말타기가 인기라고 한다. 국민 소득의 증가에 따른 레저활동의 다양화로 승마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승마 기사를 보면 아이들과 여성들이 즐겨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자세를 곧추세우는 데 도움이 되는 데다 미용에도 좋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전국 곳곳에 승마장이 세워지고 몽골로 호스백라이딩을 하러 가는 사람도 많을 정도로 세월이 변했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는 뚝섬경마장이 고작이었다. 그곳에는 말이 몇 마리 어슬렁거리고 있고, 트랙은 아주 짧았다. 그러나 말을 만날 수 있다는 자체로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교관이 가르쳐 주는 대로 새들 위에 올라앉으면 모든 세상이 내 아래인 것 같았다. 몇 번의 낙마 끝에 짧은 트랙을 달려도 보고, 경속보로 뽐내다가 구보를 즐기기도 했다.

말은 의리의 동물이기도 하다. 한번은 구보 중에 부주의로 낙마를 했다.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었다가 한참 후에 정신을 차려 눈을 떠보니 거대한 말의 배가 보이는 게 아닌가. 찬찬히 상황을 되새겨보니 내가 말에서 떨어져 쓰러지자 말은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 네 다리 속에 나를 놓은 뒤 감싸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벌떡 일어나 고맙다고 키스를 해주었다. 인간은 배반을 해도 말은 한번 주인이 되면 영원하다는 말을 실감케 한 사건이었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말과 재회한 것은 미국 시골에서다. 초원에서 풀을 뜯는 말들을 보니 옛 사랑을 다시 만난 듯 반가웠다. 한 무리의 말이 자기들끼리 사인을 주고받으며 신나게 달리는 장면은 장관이었다. 이후 내 캔버스에 그들의 역동적인 모습이 자주 등장했고, 한국마사회 잡지의 표지그림을 맡을 정도로 말을 많이 그렸다.

내 작품 속의 말 역시 들판의 말이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속에서 인간이 갈구하는 자유의 한 형태를 보면서도 밤이 되면 사람 곁으로 다가오는 모습에서 두 존재 사이의 숙명적인 인연을 확인한다. 유목과 정주의 이율배반적인 요소가 한데 어우러져 있는 것이 말과 인간의 관계가 아닌가 한다.

나는 지금껏 말처럼 완벽하게 생긴 동물(인간을 포함해서)을 보지 못했다. 그 늠름한 자태, 귀족적으로 잘생긴 얼굴, 근육으로 다져진 몸매, 따뜻한 체온…. 여기에다 말을 타는 순간 사람과 적극적인 교감을 나누면서 사랑이 커진다. 난 지금도 꿈을 꾼다, 하얀 프렌치 호스를 타고 물살을 가르며 말과 하나 되어 내달리는 환상을.

사람과 말의 관계는 유구하다. 유사 이래 인간과 고락을 함께하며 깊은 우정을 샇아왔다. 그래서 말을 타려는 사람들에게 권한다. 등에 오르기 전에 눈빛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그게 말에 대한 예의라고-. 말의 등은 잠시 빌리는 자전거 안장과 달리 생명감으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가을 하늘이 높으니, 나를 네 발로 감싸준 그 말이 보고 싶다.

김테레사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