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최정욱] 아름다운 재단을 위한 변명
입력 2011-10-23 17:38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 헌공(獻公)이 총애하던 후궁 여희(驪姬)를 정실로 맞기 위해 점쟁이에게 길흉을 알아보게 했다. 거북 등을 이용한 점에서는 흉(凶), 풀을 이용한 시초점에서는 길(吉)이 나왔다. 헌공이 마음에 드는 시초점을 선택하자 거북점을 친 점쟁이가 “향기 나는 풀과 악취 나는 풀이 함께 있어, 10년 후엔 악취만 남을 것이라 했으니 시초점을 따르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헌공은 이 말을 듣지 않고 여희를 부인으로 맞았다. 이후 여희는 자신이 낳은 해제(亥齊)를 헌공의 후계자로 삼기 위해 품성이 훌륭한 태자 신생(申生)을 모함, 그를 자살에 이르게 했다. 헌공의 다른 아들 중이(重耳)와 이오(夷吾)도 도망자 신세가 됐다.
결국 헌공이 죽은 뒤 진나라는 혼란에 빠졌고, 해제가 대신들에 의해 살해되자 여희 또한 자살을 하게 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이 ‘일훈일유’ 고사는 선이 악에 의해 가려질 때 인용되곤 한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눈앞에 두고 ‘아름다운 재단’의 정체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재단 상임이사였던 박원순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전략을 주도하는 한나라당에 의해서다. ‘재벌재단’ ‘법 위에 군림한 시민단체’라는 지적에 이어 홍준표 대표는 “2008년 촛불시위를 주도한 좌파단체에 100억원 가량을 지원했다”는 색깔론까지 폈다. 아름다운 재단을 ‘좌파의 자금줄’로 규정한 셈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재단은 미국의 지역재단을 모델로 2000년 8월 설립된 곳이다. 기부금은 아동, 여성, 장애인, 노인, 교육, 문화 등의 분야에 사용되며 기부자는 자신이 낸 기금이 쓰일 분야를 지정할 수 있다. 설립 당시에는 일본군 위안부 출신 김군자 할머니가 평생 모은 재산 5000만원을 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개인 및 기업들의 참여가 잇따르면서 ‘1% 나눔’ 등 다양한 캠페인을 통해 국내에 새 기부문화를 열었다는 언론 등의 평가도 많았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과거 서울시장 재직 당시 매월 급여를 환경미화원과 소방공무원 유가족을 돕는데 써 달라며 기부한 바 있다.
그동안 선의를 갖고 나눔을 직접 실천해온 기부자들로서는 이번 아름다운 재단에 대한 갑작스러운 폄하를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공익법인인 재단에까지 ‘빨간색’을 칠해가며 나눔을 정쟁의 수단으로 삼은 것은 결국 선거에 대한 불안감을 반영한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최정욱 차장 jw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