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입력 2011-10-23 19:21
다니엘 3장13∼18절
여러분은 혹시 어떤 유혹이 와도 신앙을 끝까지 지킬 수 있다고 자신하십니까? 우리 모두는 이 질문 앞에 분명히 응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느브갓네살은 바벨론 제국의 권위와 왕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하여 거대한 금 신상을 세웠습니다. 약 7층 높이에 달하는 금 신상을 만들고 모든 신하와 백성들로 하여금 그 앞에 절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왕명을 어기면 활활 타오르는 풀무불에 넣어 죽이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이 무서운 권위 앞에서 패전국의 젖비린내 나는 청년 포로들이 감히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이 청년들은 눈에 보이는 바벨론의 권위보다 하나님의 권위를 더 두려워할 줄 알았고, 느브갓네살의 왕좌보다 하나님의 보좌를 더 존귀히 여길 줄 알았습니다.
먼저 그들은 자유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현대 인간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세 가지 힘은 돈과 권력, 죽음이라고 합니다. 현대인들은 돈의 힘 앞에, 권력의 힘 앞에 절하고 고개를 숙여야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들은 황금우상 앞에 자유했습니다. 두라 평지 위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황금우상! 그 앞에 임금과 모든 대신들이 절하고 있을 때 황금을 비웃듯 당당히 서 있는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보잘것없는 포로병에 불과했던 세 사람. 그들은 전승국의 대군주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또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의 신앙을 가졌습니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단 3:16) 이 말의 뜻은 양보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양보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양보해야 할 것은 양보하지 않고 당연히 양보하지 않아야 할 것은 너무나 쉽게 양보하곤 합니다. 우리를 유혹으로 이끌 때에, 우리를 타협의 광장으로 몰아갈 때에 우리는 여기 세 청년처럼 단호한 결의를 보여줄 줄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내 신앙을 지키기가 어려운 때를 만나곤 합니다. 평탄할 때는 그 신앙의 진위를 알 수 없습니다. 극심한 환란과 시련, 그리고 도전에 부딪혀 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또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18절에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란 말은 분명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된다는 것을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그것은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며 그분은 영원히 우리 신앙의 대상이 된다는 고백입니다. 저 겟세마네 동산에서 부르짖었던 주님의 절규가 바로 이 고백과 비슷합니다.
“내 아버지여 할 수 있거든 내게서 이 잔을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나님이여, 이 풀무불 속에서 내 몸이 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나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전적인 신뢰를 보냈던 이 세 청년은 풀무불에 던져지자마자 머리털 하나 상처입지 않고 보호를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의 신앙으로 살아갑시다. 할렐루야!
장순직 목사 (문막 드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