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 시인선’ 33년만에 400호 출간

입력 2011-10-21 17:22


한국 현대시의 흐름을 이끌어온 ‘문학과지성 시인선’이 국내 시집 시리즈 가운데 가장 많은 호수인 400호를 돌파했다. 총 판매부수도 400만 부에 이른다. 1978년 황동규 시인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로 시작한 이래 33년 만의 기록이다. 1년에 12권꼴로 시집이 나온 셈이다. ‘문지 시인선’은 1977년 계간 ‘문학과지성’ 편집동인이던 문학평론가 김병익 김치수 김주연 김현이 주축이 돼 만든 ‘젊은 시인선’이 모태지만 이후 70∼80년대를 거치며 전통 서정시에서 전위적 작품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과시하며 숱한 스테디셀러를 냈다.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약 30만부), 이성복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2만부),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0만부) 등이 세월을 넘어 꾸준히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고 문태준, 심보선 시인 등의 시집도 1만 부 이상 판매됐다. 김광규의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정현종의 ‘한 꽃송이’, 유하의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등도 이 시인선이 배출한 인기 시집이었다.

“이것은 어느 출판사가 33년 동안 시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시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라는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400권에 담긴 작품들의 가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400호 기념 시집 ‘내 생의 중력’은 301∼399호에 실린 시인 83명의 시편들 가운데 한 편씩을 골라 실었다.

문지 시인선은 그동안 황토색(1∼99호), 청색(100∼199호), 초록색(200∼299호), 밝은 고동색(300∼399호) 등 100호 단위로 표지 색깔을 바꿔오면서 국내 시집들의 표지 디자인을 선도해왔다. 400호의 테마는 ‘시인의 초상’. 시집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강계숙은 “시인의 얼굴을 보는 일은 시의 몸을 더듬는 길이며, 시에 이르는 첩경은 시인의 내면을 가늠하는 데서 출발한다”며 “시로 쓴 시인의 초상이 때로 더 큰 감동과 울림을 주는 이유는 이로부터 기인한다”고 말했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