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안의 시계! 당신은 몇시인가

입력 2011-10-21 17:26


시간을 빼앗긴 사람들 / 틸 뢰네베르크 / 추수밭

자기계발서 ‘아침형 인간’(한스미디어)은 ‘아침잠이야말로 인생 최대 낭비’라고 외치는 대한민국 사장님들의 열띤 박수를 받았다. 외국도 다르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미국)거나 ‘신은 일찍 일어나는 자를 돕는다’(스페인)

‘일찌감치 눈을 붙이고 일찌감치 일어나 건강하라’(중국) 같은 속담을 보면 아침형 인간은 문화권을 초월해 칭찬받는다. 반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올빼미형은 어디서건 홀대받았다. 그들은 게으름뱅이이거나 잘 봐줘야 무책임한 예술가로 취급됐다.

여기 구박받던 올빼미형 인간들을 위한 책이 한 권 나왔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사람들. 그들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몸 안의 시계를 발견하다

몇 시에 일어나고 얼마간 잠을 자는가. 한국 직장인 A가 새벽 3시까지 영화를 보다 잠자리에 들어 아침 8시에 눈을 떴다면 5시간의 짧은 수면은 A의 선택. 8시간 푹 자고 출근한 이탈리아의 B가 오후 1시 시에스타(낮잠)를 즐긴다면 그건 문화적 습관이다. 지금까지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몇 시에 잠들고 몇 시에 일어나는가가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면? 사람마다 다른 생체시계를 갖고 있다면? 그게 해가 만드는 물리적 시간, 국가끼리 약속한 사회적 시간과 다르게 돈다면?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는 몸과 시간이 따로 노는 만성적 시차증이 생긴다면?

1729년 프랑스 천문학자는 책상 서랍 속에 일년생 미모사 화분을 넣고 반응을 관찰했다. 미모사는 서랍 속에서 아침마다 잎을 열고 저녁에는 잎을 닫았다. 서랍 안에는 시간을 탐지할 빛이 전혀 없었다. 그건 놀라운 발견이었다. 해와 무관하게 생물 안에서 째깍대는 시계를 처음 확인한 것이다.

230여년 뒤 독일 학자 아쇼프는 지하벙커 속에 63일간 생활하며 신체리듬을 측정했다. 시간으로부터의 고립실험이었다. 참가자들은 시간을 몰랐지만 하루의 3분의 2시간 동안 깨어 있고 3분의 1시간 동안 잠을 잤다. 인간에게도 체내시계가 있었던 것이다. 다만, 고립 속에서 그들이 생각하는 하루의 길이는 제각각이었다. 다수는 하루가 24시간보다 길어졌다. 어떤 참가자는 32시간 깨어 있다가 16시간을 내리 잤다. 하루가 48시간이 된 것이다.

올빼미와 종달새의 시계

인간의 체내시계가 부정확하다는 것. 올빼미와 종달새(아침형)를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하루는 지구 자전으로 결정되지만 인간 각자의 체내 하루는 제각각으로 흐른다. 누구는 23시간짜리, 누구는 25시간짜리 시계를 갖고 사는 셈이다.

25시간짜리 긴 시계의 주인공이 있다고 해보자. 그의 하루는 매일 조금씩 뒤로 밀린다. 외부시계는 하루 24시간의 종료(밤 12시)를 알리는데 체내시계는 종료 1시간 전, 아직 밤 11시에 불과하다. 잠이 올 리가 없다. 다음날 아침에도 마찬가지다. 자명종은 오전 6시 기상벨을 울리는데 한 시간씩 밀린 체내시계는 여전히 오전 5시다. 비행기도 타지 않고 침대 위에서 시차를 겪는 것이다.

이렇게 매일 한 시간의 시차가 누적되면 이 사람의 시간은 12일 후 지구 반대편을 거쳐 24일 후에는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이런 극단적 현상을 막아주는 건 빛이다. 햇빛이라는 외부자극은 늦어진 시계를 당겨서 시차가 한없이 벌어지는 걸 막아준다. 빛을 감지하지 못하는 특정 시각장애인의 경우, 시차가 벌어졌다가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현상이 반복되기도 한다.

새벽 4∼5시면 눈을 뜬다는 극단적 종달새에게도 시계의 오류는 발견된다. 이들이 사는 하루는 22∼23시간쯤 된다. 시간이 끊임없이 앞당겨지는 셈. 이를테면 아침 5시에 종달새의 몸은 이미 오전 6∼7시의 컨디션이고, 저녁 10시만 되면 벌써 하루가 마감된다.

1교시를 낮 1시에

나이대별로 인간의 생체시계는 달라진다. 가장 극적으로 변화하는 건 10∼20대의 시계. 하루가 한껏 길어져서 이들의 하루는 성인에 비해 몇 시간이나 늦게 시작해 새벽에야 끝난다. 늦은 시계가 최고조에 달하는 건 여성의 경우 19.5세, 남성은 21세 무렵. 생리적으로 10∼20대에게 0교시는 한밤중인 셈이다. 따라서 늦잠 자는 아이들을 비난하는 대신 해결책은 아예 아침을 늦게 시작하는 것이다. 1교시 수업을 오전 10시 이후로 늦추거나 오후에 여는 게 방법이다. 실제 덴마크에서는 이런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좀 더 고전적인 해결책도 있긴 하다. 체내시계를 조절하는 건 햇빛. 가능한 한 많은 햇빛을 쐬면 체내시계가 ‘진짜’ 시간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 낮에 운동하면 밤에 잘 잔다는 건 많이 움직여 피로가 쌓였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빛으로 체내시계의 태엽을 탱탱하게 감았다는 뜻도 된다. 따라서 지각생을 줄이는 비법은 훈계가 아니라 대낮 운동장에서 하는 체육이다.

사람마다 다른 생체시계를 가졌다는 걸 안다한들 당장 변화가 생기는 건 아니다. 하지만 늦잠에 과학적 설명이 가능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올빼미들에게 놀라운 복음이 될 것 같다. 일단 게으르다는 구박은 피할 수 있게 됐다.

유영미 옮김.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