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서 쫓겨난 ‘워싱턴의 왕족들’

입력 2011-10-20 18:16

미국 워싱턴DC는 일반적으로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찾는 도시다. 동시에 권력을 잃은 많은 이들의 피신처이기도 하다. 특히 모국에서 쫓겨난 왕족과 그 후손들이 더 나은 기회를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모여드는데 다수가 ‘세계 정치의 중심’이라는 워싱턴의 위상이 자신들과 어울리는 데다 생활의 편리함도 제공하기 때문에 이곳에 정착한다고 워싱턴포스트가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974년 쿠데타로 폐위된 에티오피아 셀라시에 1세 황제의 손자인 셀라시에 왕자와 케베데 왕자비도 워싱터니안이다. 근교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에티오피아정교회에 나가면 맨 앞자리에 앉는 등 ‘특별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교회 밖에서는 일반인이다. 셀라시에 왕자는 아프리카 물 문제 해결 등을 연구하는 싱크탱크인 국제전략연구협회 연구원이며, 왕자비는 주택담보대출 담당 직원이다. 왕자는 첫 부인과 이혼하고 케베데와 재혼, ‘전통파’ 에티오피아인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갈수록 미국 내 에티오피아인 공동체에서 주목받고 있다. 젊은 세대에서 왕자의 할아버지인 고 셀라시에 황제 시대의 유산을 되새기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결코 왕위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왕자는 말한다.

조지타운대 프랑스어 교수 출신인 졸라이카 지크리아(여)는 아프가니스탄 왕족의 일원이다. 아프간 왕족은 대부분 근교인 버지니아주 북부에 산다. 이들은 고국인 아프간 문제를 걱정하지만 의견 표명을 하지 않으려 한다. 1991년 추방당한 모하마드 자히르 샤 왕이 과격 이슬람교인에게 암살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선출된’ 왕족도 있다. 코피 보아텡은 워싱턴 지역을 대표하는 가나의 왕이며 나나 아마 아치아는 여왕이다. 이들은 미국계 가나인들의 결혼식 등 각종 행사를 집전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왕족 출신이긴 하지만 실제 부부가 아니며, 워싱턴 지역 가나인들의 선거로 뽑혔다.

임기 3년인 이들은 가나에 있는 그들의 ‘상관’인 오툼푸 투투2세에게 직접 보고한다. 보아텡 왕은 “우리는 신성한 통치자를 인정하는 가나 문화를 미국 정치제도에 접목하려 한다”고 말한다.

한편 ‘제2의 카다피’가 될 가능성이 큰 예멘의 독재자 알리 압둘 살레 대통령의 아들이 워싱턴DC에 호화 아파트를 포함한 고가의 부동산을 갖고 있다고 포린폴리시(FP)가 보도했다. FP는 살레 대통령의 장남이 워싱턴DC 프렌드십 하이츠의 호화 아파트 4채와 인근 페어팩스시에 22만 달러짜리 부동산을 보유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FP는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이 아흐메드 알리 살레는 살레 대통령의 장남이 확실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정권을 지키는 최정예 근위부대인 공화국 수비대 사령관이다. 공화국 수비대는 평화적 시위를 벌인 시민들을 상대로 무자비한 공격을 여러 차례 주도했다.

배병우 기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