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무이한 인터뷰 전업작가 지승호 “인터뷰는 마라톤이다”
입력 2011-10-20 18:19
따지고 보면 ‘인터뷰성’ 저작의 역사는 유구하다.
기원 전 3세기를 전후해 쓰여진 ‘논어’는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에게 묻고 들은 말들을 공자 사후 편찬한 책이다. 총 20편으로 이뤄진 일종의 대화집에서 인터뷰이(interviewee·인터뷰에 응하는 사람)는 공자다. 인터뷰어(interviewer·인터뷰를 하는 사람)는 안연, 섭공, 자로 등 공자의 제자와 주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공자를 상대로 효제(孝悌)와 충서(忠恕), 인(仁)의 도(道)를 구하고 답을 얻는다.
서양에는 기원전 5세기에 쓰인 ‘향연’ ‘파이돈’ ‘국가’ 등 플라톤의 많은 대화편이 있다. 여기서는 주인공인 소크라테스를 중심으로 아가톤, 글라우콘, 트라시마코스 등이 존재의 근원과 영혼의 불멸을 놓고 나눈 치열한 문답이 생생하게 전개된다(단, 주변 인물들에게 공세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소크라테스의 역할이 인터뷰어인지, 인터뷰이인지는 좀 애매하다).
그렇게 면면이 이어져 온 문답형 인터뷰 방식은 현재 사회과학 서술의 한 장르로 정착돼 있다. 책 한 권을 통째로 ‘인터뷰집’ 형태로 낸 저자도 적지 않다. 그러나 좀 거창하게 얘기해서, 동서고금의 사례를 다 견줘 봐도, 지승호(45) 작가의 존재는 특별하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독보적이다. 그는 2002년 9월 ‘비판적 지성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시작으로 지난 11년 간 ‘오직’ 인터뷰 작업에만 몰두했다. 그가 지금까지 인터뷰해 활자화한 인사가 200명이 넘는다. 단행본으로 출간한 인터뷰집만 총 29권. 게다가 지 작가는 ‘딱 한 사람’만 파고들어 400페이지 안팎의 책으로 낸 게 12권이나 된다. 그는 지금까지 존재한 적이 없는, 유일무이한 ‘인터뷰 전문’ ‘인터뷰 전업’ 작가다. 소속된 매체도 없이.
그는 사회과학 분야 베스트셀러도 여러 권 출간했는데, 급기야 최근에는 ‘초대박’을 냈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을 인터뷰한 ‘닥치고 정치’다. 현재 각종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주간 베스트셀러 3위 안에 들어있다.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김어준 총수가 직접 쓴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지 작가가 “이 얘기부터 시작하자” “그건 무엇 때문이지?” “이런 뜻이군” 등으로 묻고 추임새를 넣으면 김 총수가 “그렇지” “그건 아니고” “좋아” 하며 답변을 이어가는 인터뷰집이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작가에서, 이번 책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지 작가를 18일 서울 염곡동 그의 자택과 인근 카페에서 잇따라 만났다.
국내외 통틀어 경쟁자가 없다
-김어준 총수가 혼자 책을 써도 됐을 텐데, 왜 굳이 지 작가와 공동 작업을 했을까.
“내가 전에 이런 인터뷰집을 내자고 했는데 한참 답이 없다가 갑자기 하자고 응했다. 나랑 작업했을 때는 뭔가 이유가 있을 거다. 도저히 혼자 쓸 시간이 없었다든지. 글을 쓰는 거하고 말로 하는 거하고는 다르다. 자기 혼자 떠들면서 그걸 그대로 받아 적는다고 해도 정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가수 신해철(그는 지 작가와의 인터뷰집 ‘신해철의 쾌변독설’을 낸 바 있다)이 ‘말빨’이 없어서 혼자 책을 못 쓴 게 아니다.(웃음)”
-그렇겠다. 2∼3시간씩 말은 얼마든지 할 수 있어도 그 분량만큼 글로 쓰는 건 영역이 다를 것이다. 그나저나 ‘닥치고 정치’가 29번째 저서라는데, 인터뷰집을 그렇게 많이 낸 저자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비슷한 저자가 누가 있나?
“글쎄…. 영화잡지 씨네21 김혜리 기자, 패션지 보그 김지수 기자,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 등 인터뷰집을 낸 사람이 몇 명 있다. 나 외에 가장 많이 낸 사람은 동아일보 황호택 논설실장일 것이다. 6, 7권 정도 출간한 것으로 안다. 해외의 경우는 이탈리아의 저널리스트 오리아니 팔라치를 꼽을 수 있겠는데 10권은 넘지 않는다.”
전설의 여기자 오리아니 팔라치는 아라파트, 간디, 호메이니, 덩샤오핑과 같은 세계적 거물들을 만난 뒤 ‘역사와의 인터뷰’ 등을 출간했다. 황호택 실장은 월간 신동아에 연재한 명사들과의 인터뷰 기사들을 모아 ‘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그들에게 길을 물으니’ ‘생각의 리더 10인’ 등의 인터뷰 모음집을 냈다. 그러나 양적으로나 집중도 면에서나 지 작가와 비교하기는 어렵다.
-인터뷰 전업작가가 왜 그렇게 없나.
“독하게 이것만 하겠다고 마음먹지 않는 한 힘들 수밖에 없다. 인터뷰어 한 사람이 계속 새로운 책을 기획하고 몇 달간 그 책을 만드는 데만 매달리기에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또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어려움이 따른다. 생각해보면 나는 눈에 뭐가 씌어서 버텨온 것 같다. 내가 다른 사람을 벤치마킹하자고 해도 이걸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 없어서…. 그래서 맨 땅에 헤딩해 왔다.”
-언제부터 인터뷰를 시작했나.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지만, 실은 학창시절에 농구만 했다. 당시 교내에서 슛이 제일 좋아서 별명이 이충희를 본 딴 ‘지충희’ 였다. 화염병 한 번 안 던져봤다. 졸업하고 우여곡절 끝에 인터넷 미디어를 운영하며 칼럼리스트로 활동했다. 2000년이 분기점이다. 시사 여성 주간지 ‘우먼타임스’에서 7개월간 일했다. 매체 특성에 맞게 여자들한테 친화적인 남자들을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면 어떨까 해서 진중권, 김규항, 유시민씨 등을 만났다. 매주 전면 인터뷰 기사를 썼다. 그 당시에 인터뷰 기사로 한 면을 다 털어 연재하는 건 파격이었다. 인터뷰라는 장르가 참 재미있다고 느껴져서 그 일을 계속하자고 마음먹었다. 2001년에 회사를 그만둔 뒤에도 다른 매체에서 계속 인터뷰 일을 하다 2002년에 첫 인터뷰집을 냈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곧 다른 출판사에서도 책을 내자고 연락이 왔다.”
과묵하지만 수다스러운
-지 작가가 인터뷰를 한 인물들을 보면 다들 자신의 주의·주장과 작품으로 먹고 사는 분들이다. 김수행, 장하준, 우석훈 같은 경제학자는 경제학 책으로, 공지영 같은 문인은 소설과 에세이로, 감독들은 자기 영화로 발언하면 된다. 평소 이슈에 대해 실컷 목소리를 내는 논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들이 굳이 자기가 살아온 얘기와 주장을 한 권의 책 분량으로 다 털어놓고 맡기는 이유가 뭔가.
“어느 때에 자기 삶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또 자기가 사람들한테 오해받고 있는 점, 뭔가 답답하고 억울한 점에 대해 해명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 본인이 글을 쓰면 자세가 안 나오고 어색할 수 있다. 장시간의 인터뷰를 한다는 결심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자기 사정을 잘 들어줄 수 있을지, 제대로 기록할지 알 수 없으니까. 인터뷰어가 그냥 막 다가가서 내가 굉장히 스킬이 좋고 상담 잘 하니까 나한테 다 털어놔라, 그런다고 믿고 입을 열지는 않을 거 아니냐. 그런 부분은 인터뷰어가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아, 이 사람에게는 내가 얘기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하는데, 나는 꾸준히 작업을 하다보니까 업계에서 신뢰감이 어느 정도 축적돼 있는 것 같다. 얘기 더 듣자고 상대방에게 굽실거리는 것은 아니다. 말투만 예의 바르게 할 뿐이지, 그 사람이 불편해 할 얘기는 다 물어본다. 독자들이 궁금해할 테니까.(웃음)”
지 작가와 인터뷰한 사람들이 어떤 느낌을 갖는지는 당사자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북대 교수 강준만은 “지승호는 오리아나 팔라치보다 더 윤리적이고, 미국 방송 저널리스트 바버라 월터스보다 성실하다”고 평했다. 공지영은 “오랜 시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혼자서 묵묵히 인터뷰어의 길을 걸어온 ‘어리석은’ 지승호씨와 나는 기꺼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했다.
우석훈의 경험담은 집약적인 평가를 담고 있다. “내가 대담집이나 인터뷰집을 출간하게 될 가능성은 사실상 0%였다. 그만큼 나는 낯가림이 심하고, 남들 앞에 공개되어 서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 내가 인터뷰집이라는, 익숙지 않을 뿐더러 ‘안 한다’는 평소의 결심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은, 그가 지승호였기 때문이다. 지승호는 다른 어떤 인터뷰어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만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바로 인터뷰를 책으로 출간하는 새로운 장르의 개척자이자, 성실한 출간인이라는 점이다. 실제 성격은 과묵하지만, 매체 속에서의 지승호는 한국의 그 누구보다도 수다스럽다. 그만큼 많은 사람을 만나 ‘말 좀 해보세요’라고 말을 시키고, 수다스러운 국면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지승호 말고는 없다.”
참는 인터뷰어에게 복이 있다
-인터뷰 사전준비를 어떻게 하나.
“인터넷에 올라와 있거나 활자화된, 상대방에 관한 각종 자료를 최대한 섭렵한다. 인터뷰 대상이 공지영 작가라면 그의 모든 책을 사서 읽고, 관련된 평론과 인터뷰 기사를 다 찾아본다. 영화감독이라면 그의 영화 DVD를 전부 구해서 본다. 사실 영화감독들 인터뷰집 ‘감독, 열정을 말하다’ 같은 걸 한 번 내려면 DVD값 지출이 인세 수입과 거의 맞먹는다. 공 작가 작품은 중고 책도 있고 해서 다 사는데 20여만원 들었는데, 감독들 작품은 장난이 아니었다. DVD는 한 편에 2만원이 넘으니까. 감독 한 명이 작품을 7∼10편씩 찍었는데, 그런 감독을 7명씩 인터뷰해서 책을 내려니.(웃음)”
-인터넷으로 싼 값에 다운로드 받아서 봐도 되지 않느냐.
“감독들이 자기 영화를 설명한 코멘터리(주석·해설)를 들어야 하니까. 거기에 부가 영상도 있고 제작 과정도 나온다. DVD로 보는 게 자료 차원에서 충실하다.”
-질문지는 어떻게 준비하나.
“질문은 처음부터 잘 정리해서 들어가야지, 헝클어져 있으면 답이 안 나온다. 살아온 순서대로 연대기로 갈 것인지, 그의 작품별로 접근할 것인지, 특정 이슈에 집중할 것인지 등등. 방향을 잡은 뒤 질문 목록을 300개 안팎 준비한다.”
-인터뷰는 몇 시간씩 하나.
“평균적으로 20∼30시간 한다. 가장 오래 한 게 공 작가인데, 40시간 정도 했다. 한 번에 11시간 한 적도 있다. 낮 12시에 만나서 밤 11시까지.”
-인터뷰 마치고 녹취 푸는 데도 오래 걸리겠다. 기자의 경우 2시간 정도 인터뷰해도 녹취 푸는 데 반나절 걸리더라.
“인터뷰 시간의 보통 3배 정도 걸리니까 그럴 거다. 내 경우 집중이 안 될 때는 10분 푸는데 2시간 걸리기도 한다. 녹취를 다 풀면 보통 200자 원고지 2000장 분량이 넘는다.”
-인터뷰를 하면서 힘들었던 사람은 누구냐. 기자의 경험으로 생각할 때는 뭐를 물어봤는데 자꾸 ‘핀트’가 안 맞는 얘기를 한다거나, “예” “아니요” 식으로 단답형으로 말하는 사람이 힘들다.
“그 사람 스타일이 그렇다면 할 수 없다. 그런데 나는 그것도 인터뷰어에게 잘못이 있다고 본다. 그 사람의 대답이 그렇다면 질문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계속 방법을 찾아야 하다. 그 사람이 나한테 맞춰서 대답을 잘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지 않겠느냐.”
-기자들의 업무에서도 인터뷰가 기본이다. 그런데 우리 팀원들 중에서도 인터뷰를 하고 나서 “얘기하는데 자꾸 동문서답하더라” “문장이 제대로 완성이 안 되더라. 한 가지를 얘기하다가 중간에 다른 얘기로 빠지지를 않나” 하고 힘들어하는 경우가 있다.
“무슨 얘기를 듣고 싶은지 기자가 알고 있다면 그걸 듣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게 있다. 기자들 같은 경우 바쁘니까 그걸 잘 못 챙기고 인터뷰하러 갈 거다. 준비 안 하고 가니까 당연히 그 사람하고 핀트가 안 맞는 거다. 인터뷰이에게는 다 자기 입장과 상황이 있다. 심지어 인터뷰이가 무식해서 자기가 생각하는 걸 제대로 표현을 못 하면 인터뷰어가 그걸 끌어내기 위해 그 사람보다 더 베이스(기초)를 많이 깔고 가야 할 때가 있다. 양심이든 종교적 신념이든, 이게 옳다는 직관을 가지고 행동을 하면서도 그 이론을 얘기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경우 오히려 인터뷰어가 공부를 해갖고 가서 ‘이래서 이런 걸 하시는 거죠?’ 하고 멍석을 깔아주면 ‘아, 그런 것 같습니다’ 하면서 얘기가 나온다. 그런 준비 없이 기자라고 가서 자꾸 다그치면 답이 안 나오는 거다. 준비를 제대로 안 하고 가면 ‘선수’들한테 말리는 경우도 있다. 상대방이 어떤 오류를 말하면 ‘그건 틀리잖아요’ 하고 지적할 수 있는 체크 포인트를 준비하고 가야 한다.”(지 작가는 기자의 속을 계속 뜨끔하게 했다)
-만나서 힘든 것보다 불쾌해지는 사람들도 있다.
“예의가 없는 사람들이 있죠.”
-예전에 누구 만나러 갔는데, 기자가 약속하고 멀리서 찾아갔는데도 자리에 앉아서 일어나지도 않고 떡 하니 다리만 꼬고 있더라. 인터뷰는 그럭저럭 화기애애하게 마쳤지만, 내가 가는데 또 일어나지도 않더라.
“그런 걸 ‘가오’(허세·있는 척)라고 생각하는 거죠. 나 같은 경우는 어차피 내가 듣고 싶은 목적이 있어서 가는 거니까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 사람의 스타일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만다. 예전에 개그맨 전유성씨가 낸 책 제목이 있다.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웃음) 나는 인터뷰할 때 상대방이 약속보다 좀 늦게 오면 속으로 더 좋아한다. 자기가 미안하면 나한테 좀 더 잘하겠지 하고.(웃음) 물론 미안해야 할 상황에서도 신경조차 안 쓰는 사람도 있다. 나한테 면박 주는 사람도 있었다. 민망하지만 어떡하겠느냐. 이해하려고 해야지. 그런데 그 사람이 나중에 트위터에 ‘지승호가 대한민국에서 남의 말 제일 잘 듣는 사람’이라고 올렸더라.(웃음)”
100권의 꿈, 마라토너의 꿈
-지금까지 몇 명이나 인터뷰했나.
“200명은 넘고 250명 정도 될 거다.”
-본인이 만나고 싶은 사람 위주로 섭외하나.
“출판사에서 의뢰해오는 경우도 많은데, 그렇더라도 내가 관심이 있어야 한다. 책 완성하는 데 서너 달을 쏟아야 하고, 길면 반년 이상을 매달려야 하는데, 내가 관심 없는 사람한테 그렇게 투자하기에는 정서적으로 힘들다. 만약 그게 엄청나게 돈이 될 것 같다면 그거야 뭐.(웃음)”
-그런데 대상자 성향이 너무 치우쳐있는 거 아니냐고 볼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의미가 있는 사람이 다양하게 있는데 지 작가는 주로 진보 쪽 인사들을 만났으니까. 보수진영 중에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은 없나.
“윤여준 전 한나라당 의원이 궁금하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도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TV에서 토론이나 인터뷰하는 걸 보면 진보 인사라는 사람들이 조갑제씨를 상대로 말을 잘 못하더라.
“그 사람이 기가 세서 그렇다.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도 비슷하다. 전여옥하고 유시민이 붙으면 보는 사람들이 전여옥이 이겼다고 생각한다. 기가 세서 그렇다. 근데 나는 상대방과 논쟁을 할 필요는 없고, 그 사람이 생각하는 알맹이가 대체 뭔지,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어떤 트라우마(정신적 상처)가 존재하는 건 아닌지 그런 걸 묻고 싶다.”
-29권 중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뭔가.
“공 작가 책이 8만∼9만부 팔렸다. 사실 공 작가는 나한테 은인 같은 분이다. 경제적으로 정말 어려웠던 시기였는데, 그 책 수입 덕분에 2년 정도 산소호흡기 달 수 있었다.(웃음) 최근에 낸 ‘닥치고 정치’가 기록을 갱신했다. 출간 3주밖에 안 됐는데 14만부 나갔다. 그 외 ‘PD수첩-진실의 목격자들’ ‘신해철의 쾌변독설’ 등이 2만부 나갔다. 사회과학 분야 출판에서 1만부만 해도 대박이다. 인세는 통상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5대5로 나눈다.”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얻는 이득은 뭔가. 여러 전문가들 만나면서 스스로에게 공부가 되는 측면도 있겠다.
“사실 그게 가장 좋다. 매우 재미있는 공부다. 자료 조사하면서 예습하고, 직접 만나서 실습하고, 녹취 풀고 교정보면서 여러 번 복습하고.(웃음) 그런 재미가 있으니까 지금까지 해왔지, 돈벌이도 안 되는데 단지 의무감 때문에 한다면 못 한다.”
-어떤 글을 보니 ‘미디어 황제’를 꿈꿨다는 얘기를 했더라.
“없는 놈이 꿈은 크게 갖는다고. 그나마 그렇게 무모한 생각을 해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곧 30번 째 책을 낼 건데, 건강이 허락된다면 100권까지 내고 싶다.”
-30번째 책은 어떤 건가.
“가제가 ‘한국 코미디의 역사’인데 시대를 풍미한 인물 위주로 기록하려고 구상 중이다. 배삼룡, 이기동, 서영춘 등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서는 그 가족들을 인터뷰하고, 후대 분들은 연대별로 인터뷰해서 3권 정도 시리즈로 낼 생각이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인터뷰 스타일을 이제 바꿀 생각은 없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달라질 건 없다. 글쓰기 형식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내 자신은 최대한 안 드러내면서 우직하게 가려고 한다. 그게 길게 가는 길이다.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 상대방을 들이받으면서 공격적으로 하는 인터뷰어도 있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단행본 저자로서의 호흡을 오래 지속할 수 없다. 굳이 내 스타일을 바꾸지 않아도 만나는 사람에 따라 책 분위기는 자연스레 달라진다. 그 사람의 결에 맞추면 되는 것이다. 나를 만나서 신뢰감을 갖고 편하게 조근조근 풀어낼 수 있도록, 발언이 아주 섹시하지는 않더라도 그 사람의 은근한 매력이 배어나올 수 있도록 하는 기조를 바꾸지 않겠다. 나는 봅슬레이 선수가 아니라 마라토너다. 마라톤이 굉장히 지루할 수 있지만 나는 그 2시간짜리 게임을 보게 만드는 사람이다. 100장짜리 짧은 인터뷰를 몇 편 모은 것하고, 1000장짜리 한 편하고는 다르다. 다른 인터뷰어는 그런 긴 호흡으로 증명해 낸 적이 없다.”
인터뷰 전문가를 인터뷰한 기자의 심정
인터뷰를 마치면서 기자는 왠지 부끄러웠다. 나는 지승호라는 사람을 인터뷰하기 위해 얼마나 준비를 했던가. 그가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를 하는지는 29권의 인터뷰집에서 그가 상대방에게 던지는 질문 속의 수많은 인용과 예시들을 보면 곧 알 수 있다.
그래서 배우 오지혜는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것 같다”고 했고, MBC 김영희 PD는 “너무나 꼼꼼하게 질문을 하셔서 할 얘기를 다 한 것 같다”고 했다. 장하준 교수는 “보충 인터뷰를 이메일로 하자”는 지 작가의 요청에 “이메일보다는 전화로 했으면 한다. 지난번 인터뷰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지 선생님 같은 전문 인터뷰어와 이야기를 하니 제가 단순히 질문에 답한다기보다는 진짜 대화가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서 저도 생각이 정리가 되고 발전이 되더라”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늘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봉준호 감독 인터뷰를 앞두고 전날 새벽까지 140개가 넘는 질문을 만들어놓고도 ‘이 사람이 날 바보로 보지 않을까’라고 고민하며 한 개의 질문도 던지지 못할 것 같은 기분에 빠진 적도 있단다. 진정 완벽주의자다. 그는 “인터뷰를 제대로 하려면 그 사람이 쓴 모든 책을 읽고, 관련 분야의 책을 250권 정도는 읽고 가야 한다”고 한 일본의 대(大)저술가 다치바나 다케시의 말에 동의한다고 했다.
지 작가를 인터뷰하고 나니 기자도 공부가 많이 된 것 같다. 인터뷰를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그를 초청해서 다른 기자들과 함께 ‘인터뷰 특강’이라도 들어야 할 모양이다.
김호경 기자 hkkim@kmib.co.kr